[중앙로365] 멋진 신세계가 온다
백재파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공모 칼럼니스트
인류의 미래를 그린 고전인 올더스 헉슬리의 . 이 세계에서 인간은 유전공학의 힘으로 대량 생산된다. 그리고 태아 상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미리 결정된 사회 계급과 직업에 따라 세뇌를 당한다. 유전자 조작과 세뇌 덕분에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 계급과 업무에 만족한다. 또한 늙고 병들지 않으며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통해 쾌락을 얻는다. 이처럼 멋진 신세계에서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이룩해 놓은 과학기술에 스스로 종속돼 기계문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마저 사라진 이 미래를 진정한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 소설
성찰 사라진 과학기술 만능 세상
사유하는 인류에게 정말 좋을까
대선 후보자, 과학기술 공약 봇물
밑바탕인 인문학 지원 언급은 전무
양쪽 조화 없는 사회는 공허할 뿐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주요 공약을 살펴보면 아쉽게도 우리의 미래는 올더스 헉슬리가 묘사한 멋진 신세계를 향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과학기술 5대 강국 실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과학기술 추격 국가에서 원천 기술 선도 국가로 발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과학기술 중심 국가 건설을 각각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인간과 인간다운 삶에 대해 사유하는 인문학 지원에 대한 공약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인문학 지원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인문학 관련 학과는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학 구조조정의 1순위가 되어 통폐합되기 일쑤였다. 이로 인해 인문계열의 입학생 정원은 10년 전에 비해 20% 감소하였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 연구개발비 비중이 미국과 영국의 경우 각각 7%, 9.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체 연구개발비 예산의 1.2%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 경시 풍조는 경제 논리에 기반한 과학기술 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과학기술만이 인류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인문학을 우주여행 시대의 선비놀음 따위로 취급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발생한 부작용 문제도 적지 않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 평등과 공정 등 이 시대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는 과학기술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유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은 인문학적 성찰 위에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최근 활발히 개발 중인 자율주행 기술을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의 문제로 살펴보자. 자율 주행차를 운행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아이가 뛰어들었다. 급제동을 해도 아이는 차에 치여 죽게 된다. 만약 차의 방향을 바꾼다면 벽에 부딪혀 내가 죽게 된다. 혹은 길을 가던 할머니를 치어 죽게 한다.
이러한 경우 어떤 선택을 하도록 자율주행 자동차에 프로그래밍해야 하는가? 규칙을 어긴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어기지 않은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한가? 또 당신은 나를 죽이더라도 많은 사람을 살리도록 프로그래밍한 자동차를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떤 위험에서도 나의 생명을 지키게 프로그래밍한 자동차를 구입할 것인가? 자율주행 기술 자체는 과학기술에 따라 개발되지만, 기술의 운용은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 스티브 잡스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발표회에서 하나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 사진에는 ‘liberal arts(인문학)’와 ‘technology(기술)’가 교차하는 표지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과학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즉 맹목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발전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며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우리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안내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물론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그러나 인문학적 성찰이 배제된 과학기술은 맹목적이고 공허하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은 부디 인문학적 시각을 통해 과학기술이 간과하는 사회적 문제를 살피고 인간 중심의 과학기술 발전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