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지방의 대선 참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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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3·9대선 정국이 막판에 요동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네거티브로 얼룩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TV토론을 끝내자마자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하필 공직선거법상 본투표를 6일 앞둔 날이라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바람에 단일화 민심의 향방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계 제로의 ‘깜깜이 선거’가 됐다.

대혼란에도 유권자의 시간은 찾아왔다. 이제 딱 3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4~5일 사전투표와 9일 본투표다. 감염병 대유행 시대에 치르는 사상 초유의 대선이라 변수는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확진을 피해 건강을 지키는 전략적인 투표가 필요하다. 더불어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지방의 투표 전략도 요망된다. ‘지방의 대선 관전법’에 이어 ‘지방의 대선 참전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는 이유다.

단일화 혼란 속 사전투표·본투표
지방소멸 막을 한 표 행사 절실

‘비호감 대선 시대정신은 분권’
대통령 권력 얼마나 내려놓느냐 관심

공약 따지고 비교하는 노력 필요
유권자도 정파적 선입견 벗어나야


“비호감 대선의 시대정신은 분권”이라는 주장을 이 난을 통해 강조해 왔다.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앞서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한쪽에다 몰아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집권화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그 길은 마침내 지방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으로 나 있다.

각 후보의 공약은 여전히 지방의 성에 차지 않는다. 특히 각 가정에 전달된 ‘제20대 대통령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를 뜯어 찬찬히 읽은 지방 유권자라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실감하게 된다. 모든 후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지방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책자형 선거공보가 공약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유권자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약이라는 점에서 후보의 진정성에 닿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역’이라는 말을 딱 한 번 썼는데, ‘국민통합 대통령-지역·세대·남녀 편가르기를 하지 않겠습니다’가 전부다. ‘농촌은 균형발전의 주요 거점으로 육성’이라는 구절이 있지만 자치분권·균형발전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윤 후보는 10대 약속 9번째로 ‘균형발전,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을 꼽은 뒤 ‘신공항 조기 건설 및 연계 교통망 확충’ ‘해양산업 육성 및 글로벌 항만으로의 도약’ 등 6가지를 제시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본다면 도토리 키재기식 오십보백보다.

TV토론과 거리 유세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양강’의 공약은 정권교체와 정치교체다. 윤 후보는 ‘닥치고 정권교체’만을 주장해 집권 후 지방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로 내놓은 ‘더 좋은 정권교체’는 그나마 진일보했다. 이 후보의 정치교체는 대통령중임제 개헌과 통합정부, 다당제 등 정치혁신을 통한 분권이 돋보였다.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4번째인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균형발전’과 맞물려 상대적인 우위를 보인다. 하지만 양강 모두 지방자치 연방제 개헌 등 근본적·제도적 개선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차악도 없는 선거’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점수의 평균점을 올려 그나마 차선이라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유권자의 운명이다. 특히 지방소멸 위기로 숨이 간당간당하는 처지인 지방으로서는 그나마 5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나 몰라라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면 훗날 그런 씨앗이 뿌려졌을 때 제대로 열매 맺을 토양이 어느 쪽인가를 고민할 일이다.

집에 도착한 책자형 선거공보를 다시 꺼내 꼼꼼하게 읽어 보고, 선관위 권유를 따라 정당·후보자의 공약과 선거공보가 실린 정책·공약마당(policy.nec.go.kr)에도 들러 볼 일이다. ‘공약은 공약(空約)’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 된다. 되돌아보면 선거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해 왔고, 이번 대선 또한 예외는 아니다.

공약은 정치권이 민심을 얻는 대가로 쓴 차용증으로, 유권자는 이를 근거로 언제든 부채를 갚으라 요구할 수 있다. ‘말만 번드르르하다’고 공약을 마냥 불신할 일이 아니다. 공약을 지키게 하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완성은 유권자에 달려 있게 마련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선 때가 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과거 후보들이 종교 지도자를 찾아가면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특정 후보 편이 아니라는 말을 곧잘 듣고는 했다. 지금 버전으로 한다면 “하느님은 이 씨의 하느님도 윤 씨의 하느님도 아니며, 부처님도 윤 씨의 부처님도 이 씨의 부처님도 아니다”가 되겠다. 천심(天心)으로 비유되는 민심(民心)도 사사로운 정파적 선입견을 내려놓고 누구를 선택하는 게 진정 지방과 나라를 위한 길인지 살피고 또 살필 때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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