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도예·섬유공예 통해 고난 헤쳐 나가는 여정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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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망운사 주지 성각 스님

불교에서 ‘깨달음’은 수도승이 부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길을 붓과 깊은 먹빛으로 표현한 그림을 ‘선화(禪畵)’라 부른다. 화법이나 서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를 형상화한 선 예술. 성스럽게 그려지는 불화와는 다른, 먹선 몇 개뿐이지만 보는 이에게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이 선화의 힘이다.

선서화 분야 국내 유일 무형문화재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참여
불교 성지 연화도서 특별한 작품 선봬

대한민국 불교 선화를 논할 때 첫손에 꼽는 인물이 바로 성각(경남 남해 망운사 주지) 스님이다. 성각 스님은 선서화 분야 국내 유일의 무형문화재이자,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9호 선화 제작 기능보유자다. 스님 선화는 환하면서 평온하고, 천진한 표정을 지닌다. 대표작 ‘억겁의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에 밝은 해처럼 떠오른다.

어린 시절 김해 동림사에서 처음 선화 세계를 처음 접한 뒤 평생 남해와 부산을 오가며 선화를 그려온 스님이 이번엔 통영에서 특별한 기획전을 준비했다. 오는 18일 개막하는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를 통해서다. 트리엔날레(tr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3년마다’라는 의미의 형용사다. 지금은 3년 주기로 열리는 미술 중심의 종합 예술제로 쓰인다. 통영트리엔날레는 섬을 매개로 한 국내 최초 통합형 다원예술제다. 세계 13개국 37명의 유명 작가가 참여해 미술과 음악, 미디어아트 등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기간은 5월 8일까지 52일간이다.

성각 스님은 주제관에 해당하는 섬 전시를 맡았다. 관객이 섬을 찾아 관람하도록 유도하는 형태다. 570개의 보석 같은 섬을 보유한 통영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성각 스님의 기획전 주제는 ‘바다 너머 피안(nirvana above waves)’이다. 도예 부문 최지은 작가, 섬유공예 황소이 작가가 함께한다.

스님은 “피안은 불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는 거칠고 두려운 대상이지만, 이를 품고 사는 이들에겐 삶이고 안식처”라며 “선화와 도예, 섬유공예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여정을 구현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시 장소도 각별하다. ‘불교 성지’ 통영 연화도의 연화사가 무대다. 연화사는 성각 스님의 은사인 고산 큰스님(전 쌍계총림 방장)이 1998년 창건한 사찰이다. 스님은 “연화도는 민중의 고단한 삶의 끝에서 피어난 미륵정토”라며 “섬 자체가 바다에 피어난 연꽃이다. 연화사는 그 안에 하얀 자태로 들어앉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화도 일대를 서방정토(극락세계)로 진입하는 길로 해석해 ‘다도·화도·향도’ 등 불교 수행법을 통해 행복의 땅에 도착하는 과정을 담는다. 특히 해탈·열망·해방의 상징을 부여한 선화 작품에 염색천(조각보)을 엮어 선과 색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의 지향점을 시각언어로 표현한다.

이를 위해 대웅전 가는 길에 선화 18점을 지그재그로 배치하고 기둥 사이에 바람에 흩날리는 황금색 천을 덧대 시각 효과를 높인다. 여기에 요사채 3칸을 하나의 독립공간으로 구성, 푸른 코발트 색 천 위에 선화 1점을 올려 참선과 수행의 공간을 표현한다.

성각 스님은 “새로운 선화의 세계를 선보일 수 있어 설렌다”면서 “선화의 대중화는 물론 통영의 탁월하고 소중한 문화, 예술, 인문, 자연 자산을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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