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중국 역사공정,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됐다
사기, 2천년의 비밀 / 이덕일
중국은 현재 공산당이 직접 주도하는 국가 차원의 역사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핵심은 중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한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공정의 뿌리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됐음을 저자는 파헤치고 있다. ‘사기’는 중국을 대표하는 정통 역사서라는 게 세간의 평이지만, 이덕일 선생은 전혀 색다른 시각으로 사기에 접근하고 있다.
2000년 전 사마천은 중국의 시작부터 한대(漢代)에 이르는 천하사를 서술하기 위해 편년체가 아닌 기전체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 체계를 만들었다. 방대한 중국사를 편년체로 서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전체라는 새로운 형식을 취한 게 단순히 이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즉, 역사의 정통성과 체계적인 계통을 수립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동이족임이 명백한 삼황을 지워 버리고 황제를 중국 역사의 시초로 삼았다. 이민족인 동이족의 계보를 정통 한족 계보로 둔갑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삼황오제를 비롯해 사마천이 중국사의 시작으로 삼았던 황제의 계보, 그리고 요순 선양의 실체, 하은주의 시조 등 여러 사료를 근거로 한족 정통 계보를 만들고자 한 사마천의 의도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기’는 저사(著史)가 아니라 작사(作史)였던 셈이다.
저자는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신세계는 여전히 미망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조의 역사를 바로 찾는 게 문명국으로 가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덕일 지음/만권당/336쪽/2만 2000원.
윤현주 선임기자 hoh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