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 ‘비대면’이 대세… 코로나가 범죄 유행 바꿨다
자영업자 A 씨는 최근 자신을 질병관리청 역학조사관이라고 소개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가게에 확진자가 방문해 방역지원금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찍어 보내주면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였고, A 씨는 해외결제 송금 서비스를 통해 수백만 원을 빼앗겼다.
코로나19 대유행이 3년 차를 맞으면서 범죄 발생 양상도 비대면으로 진화하고 있다. 폭력과 절도 등 대면 기반의 강력범죄는 줄어드는 반면, 보이스피싱이나 사이버 명예훼손·스토킹 등 비대면 범죄는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작년 사이버 금융범죄·명예훼손
부산서 각각 5배·2배 이상 증가
불법콘텐츠범죄 등 수법도 다양
폭력·절도 등 대면 범죄는 줄어
2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지역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절도·폭력) 발생 건수는 2만 8888건으로 2018년 3만 4374건에 비해 15.9%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폭력 범죄는 1만 6113건 발생해 2018년보다 3765건 적었으며, 절도는 1만 2678건으로 3년 새 1680건 줄어들었다.
반면 정보통신망침해범죄와 정보통신망이용범죄, 불법콘텐츠범죄 등 비대면 범죄의 범주는 점차 다양해지고 그 숫자도 늘어난다. 2018년 이 같은 비대면 범죄가 부산에서 1만 4157건 발생했는데, 지난해에는 1만 8622건으로 31.5%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극도로 높아졌던 2020년(2만 5807건)과 2018년을 비교하면 증가율은 82.2%에 달한다.
특히 보이스피싱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금융범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발생한 사이버 금융범죄는 1974건으로 2018년 341건에 비해 5.7배나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해외에 콜센터를 두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탓에 2000건 가까이 발생했지만 검거 건수는 422건으로 다른 범죄에 비해 검거율이 현저히 낮다.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은 1867건 발생해 2018년(851건)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38건이 발생한 사이버 스토킹(기타 포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해킹이나 분산서비스거부(DDoS)·악성프로그램을 활용한 범죄 등은 소폭 감소하거나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고성능 CCTV나 블랙박스 보급의 확산으로 기존 범죄가 설 자리를 잃자 범죄 양상이 비대면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이를 앞당겼다고 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범죄의 총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범죄 환경이 변화되며 사이버공간으로 범죄가 옮겨간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찰의 수사도 범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