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선전전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48㎞ 떨어진 흑해 즈미니 섬의 국경수비대원 13명이 러시아 전함에 맞서 결사 저항하다 전원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항복을 권유하는 러시아군에 “꺼져라”라고 외치는 이들의 기개는 큰 감동을 줬다. 그런데 실제로는 국경수비대원들의 항복으로 러 해군이 무혈입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 영웅을 만들기 위한 가짜뉴스였다. 어쩌면 우리 편 전과를 부풀리고 적군을 깎아내리는 건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흔한 일인지도 모른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수 군사작전’이라면서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러 정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러시아계 주민을 살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을 진주시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만 내놓았다.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기보다는 침공에 대한 자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선전전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 러 하원은 군 운용에 관한 허위 정보가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을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CNN, BBC,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에서의 취재 보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전이란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는 떨어뜨리기 위한 심리전이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이 분야 대표선수였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선전선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는 괴벨스의 말이다. 과거 소련 역시 선전전하면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무슨 말을 해도 국내외의 신뢰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선거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대선을 목전에 둔 국내도 선전전이 절정이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인터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 대선 때마다 당선자를 예측하고 인터뷰를 진행해 왔던 타임지가 단독 인터뷰를 보도한 것은 미국이 이 후보를 유력한 차기 당선인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견강부회다. 인터뷰에는 윤석열 후보가 타임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국민의힘은 후보 일정이 여의치 않아 응대하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누구보다 강조한 윤 후보다. 세계 최대 규모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의 인터뷰를 거절한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선전전이 치열할수록 냉정하게 본질을 생각해 보자.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