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원전 공격… “부울경은 안전한가”
인류가 원자력 기술을 전력 생산에 사용한 이래 전쟁 중 처음으로 원전시설이 공격받는 일이 발생했다. 전 세계는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원전인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하자 ‘핵재앙’ 발생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인 부산·울산의 고리원전 또한 한반도 유사시 적군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기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발전용 원자로 정보 시스템(PRIS)’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지난 4일 포격을 가해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에는 6기의 원자로가 밀집해 있다. 총 발전용량 6000㎿에 이르는 가압경수로(PWR)형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 전력의 25%를 공급하는 유럽 최대 원전이다. 러시아군은 앞서 지난달 24일 가동 중단된 옛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하기도 했다.
유럽 최대 우크라이나 원전
러시아군, 포격 후 시설 장악
세계 최대 원전 밀집 부울경
유사시 대참사 우려 배제 못 해
우크라이나 원자력 규제당국은 “자포리자 1호기는 정전이고, 전력망에서 이탈한 2·3호기와 5·6호기는 냉각 중이다”면서 “방사능 수치 변화는 없지만, 핵연료 냉각기능을 상실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뛰어넘는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고 밝혔다.
문제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원전 공격과 같은 일이 한반도 유사시에 재연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곳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인 부울경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자포리자 원전의 발전용량은 전 세계 9위로, 세계 7위와 8위인 국내의 한울(6220㎿)·한빛(6216㎿)원전과 규모가 비슷하다. 세계 2위 규모인 고리원전은 자포리자보다 원자로가 하나 더 많고, 발전용량도 1.3배가량 큰 7848㎿에 이른다.
고리원전은 사실상 현재 세계 최대 원전단지다. 일본의 가시와자키 가리와원전이 고리원전보다 발전용량이 더 크다고 하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게다가 1400㎿급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되면 고리는 원자로 수는 물론 발전용량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1위가 돼, 지구상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원전 밀집지역이 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의 원자로가 격납건물 안에 있기 때문에 비행기가 부딪혀도 안전하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보관 장소가 피격되면 방사능 누출이라는 대참사를 부를 수 있다. 교전 중에 야외에 노출된 송수전 설비가 공격을 받아 외부전력이 차된돼도 매우 위험하다.
외부전력이 끊어지는 이른바 ‘소외전원 상실(LOOP·Loss of Offsite Power)’이 발생하면 원자로가 자동 정지하고 비상디젤발전기 또는 대체교류전원 등 비상전원으로 원전에 전기를 공급한다. 원자로가 정지해도 핵연료 내 방사성 물질들이 붕괴하면서 잔열이 발생하는데, 비상전원으로 이 잔열을 냉각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상전원의 기동이 실패한다면 원자로 잔열 제거에 실패해 최악의 경우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까지 벌어진다.
원자력 전문가인 숀 버니 그린피스 동아시아 수석은 “원전을 겨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교전과 폭격으로 원전의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서 “원전의 외부 전력공급이 끊어지면 비상디젤발전기에 냉각을 의존해야 하는데, 이 방법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황석하 기자 hsh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