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봄을 만났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남해 푸른 정원 두 곳

아직 찬 바람이 불지만 찬기가 많이 가신 게 느껴진다.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벌써 봄이 가까이 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세 번째 맞는 봄,

올해의 봄 풍경은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봄은 남쪽 바다에서 온다고 했던가. 경남 남해의 푸른 정원 두 곳에서 이른 봄을 만났다.

섬이정원
층층이 다랑논을 유럽식 정원으로 가꾼 곳
파리 근교 정원을 닮은 ‘모네의 정원’ 비롯
숨바꼭질 정원·물고기 정원 등 저마다 개성

■층층이 봄이 내려앉고 있는 ‘섬이정원’

넓고 푸른 하늘과 연못 끝에 선 사람을 반영하는 기다란 연못. SNS에서 봤던 바로 그곳이었다. 여행지로 친근한 남해의 낯선 장소 ‘섬이정원’이다. 섬이정원은 이름 그대로 ‘남해의 섬 그 자체가 정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섬이정원으로 가는 길, 마지막 몇백 미터가 고비다. 딱 차량 한 대만 지나갈 수 있을 너비의 길이 아찔하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지 않길 바라며 천천히 올라갔다. 주말이었지만 오후 시간이기도 했고 붐비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순조롭게 주차장에 도착했다. 진입로는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듯했다.

무인 발권기에서 표를 사고 입구로 발길을 돌리니, 봄볕을 쬐고 있는 하얀 강아지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장이 써 붙여 둔 ‘안내문’에 등장하는 안내견 ‘쌀’이나 ‘밀’이 중 한 마리인가 보다. 오가는 이들에게 큰 관심 없이 느긋한 모습을 보니 제 영역이 맞구나 싶다.

경상남도 민간정원 제1호로 등록된 섬이정원은 2007년도부터 층층이 다랑논을 유럽식 정원으로 가꾼 곳이라고 한다. 주변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바람이 부는 날이었는데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랑논의 높낮이를 이용해 만든 작은 정원들은 각각 주제와 개성을 가지고 있다. 길쭉한 모양으로 가꾼 정원은 나무 팻말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가면 순서대로 다 둘러보고 돌아 나올 수 있다.

물소리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동백나무가 반긴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산책길 시작부터 발걸음이 즐겁다. 아직 봄꽃이 활짝 피지 않았지만, 그래서 군데군데 피어 있는 꽃들이 더 반갑다. 봄이 눈에 가득 담긴다.

돌담길을 따라 ‘하늘정원’으로 향했다. 네모난 연못, 푸른 하늘,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못 끝에 서기만 하면 바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는 ‘섬이정원 내 핫플’이다. 연못 옆 갈대와 무성한 풀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봄이 깊어지고 여름이 짙어지면 사진 배경이 더욱 풍성해지겠다.

다음 장소로 향하는 길, 발밑에서 얼굴 모양의 돌조각들이 눈길을 잡는다. ‘오~’ 하며 입 벌리고 있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박찬갑 조각가가 인간 군상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뾰족한 유리 지붕 온실이 있는 ‘겨울정원’을 지나 ‘모네의 정원’에 다다랐다. 모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파리 근교 모네의 정원을 닮았다. 연못 위 아치형 초록색 다리가 그림처럼 예쁘다. 분수가 있는 ‘숨바꼭질 정원’에는 색색 꽃들이 피어 있다. 어른들은 천천히 꽃을 구경하는데 아이들은 숨바꼭질 정원이니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며 뛰어다닌다. 해맑은 동심이 부럽다.

그리스 산토리니가 떠오르는 흰 담벼락 하늘호수, 물고기 비늘 모양 같은 물고기 정원 등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히 보면 봄을 더 많이 눈에 담을 수 있다.

산책길 중간중간 놓인 테이블, 옛날 공중전화 박스, 감성 넘치는 벤치들. 방문객이 즐겁기를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정원 층층이, 꽃향기로 풀 향기로 꽉꽉 찰 봄날이 기다려지는 곳이다.



● 섬이정원 여행 팁: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 1534-110. 입장 요금은 동절기(3월 20일께까지)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하절기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만 3세~13세) 2000원이다. 남해군민은 할인해 준다. 관람 시간은 일출에서 일몰까지.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다. 안내문에 반려견은 목줄을 최대한 짧게 잡아 달라 당부하고 있다. 무인매표소 옆에는 수제꽃차를 다루는 ‘가든티샵 티팡’이 있다. 이용을 원하면 입구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된다.
경남 남해군 남면 ‘섬이정원’은 층층이 다랑논을 그대로 살려 조성한 정원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록색 다리가 인상적인 모네의 정원, 선큰가든을 지나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색색 꽃들, 유리 온실이 있는 겨울정원. 동화 속 오두막 같은 무인카페.

토피아랜드
20년 전부터 다듬은 토피어리 700여 점
뽀로로·공룡가족 등 살아 있는 작품들
바다 내려다보이는 편백숲서 숲향 만끽

■초록 숲에 펼쳐진 동화 세상 ‘토피아랜드’

무려 30년 전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유명한 영화 ‘가위손’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을 맡았던 조니 뎁이 거침없는 가위질 끝에 정원의 풀숲을 공룡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장면이다. 남해의 한 산자락에도 ‘가위손’이 만든 개인 정원이 있다. 토피어리 정원인 ‘토피아랜드’이다.

토피어리는 식물을 다듬어 다양한 모양을 만든 작품을 말한다. 지금껏 토피어리라고 하면 조그만 화분 크기만 떠올렸는데 이곳의 스케일은 다르다고 하니 궁금해졌다.

섬이정원과 마찬가지로 이곳으로 가는 길도 마지막이 험하다. 마을 안길을 통해 산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길이 좁아 차량 교행이 어렵다. 그나마 좁은 길 구간이 그리 길지 않아 다행이다. 주차장은 매표소 양쪽으로 넓게 마련돼 있다.

평일에는 매표소를 무인 운영하고 있다. 원예작업이 그 이유다. 매표소 옆 나무통에 요금을 넣거나 적혀 있는 계좌번호로 이체하면 된다.

매표소 옆 입구에서부터 곧바로 동화 같은 세상이 시작된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초록색이다. 뒤돌면 남해의 푸른 바다도 펼쳐져 있다.

주인장은 약 20년 전부터 700여 점의 토피어리 작품을 만들고 가꾸고 있다고 한다. 매일매일 자라는 나무를 다듬어 줘야 하니 열정과 애정이 가득 담길 수밖에 없다.

토피어리로 재탄생한 나무는 꽝꽝나무와 주목나무라고 한다. 사계절 상록수라 겨울에도 초록색이었겠지만, 봄이 다가와 있음은 ‘색’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꽝꽝나무 작품에 돋아나고 있는 연둣빛 새순들 덕이다. 짙은 초록에 섞인 연둣빛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작품들이다.

줄줄이 서 있는 12간지 동물들, 뽀로로와 친구들, 둘리 엄마가 있을 것 같은 공룡 가족, 라바 등 아이들에게 친근한 캐릭터가 가득하다. 동심을 저격한다. “이건 진짜 닮았어, 저건 좀 안 닮은 것 같아” 하며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토피어리 작품을 구경하는 중에도 계속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토피어리들과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키 큰 편백숲이다. 숲속이 어둑어둑할 만큼 빽빽하게 편백나무가 서 있다. 피톤치드가 눈에 보이는 느낌이다. 토피어리가 아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면, 편백숲은 어른들의 지친 몸을 잡아끈다.

잠깐 누워 쉬라는 듯 곳곳에 널따란 평상이 있고,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빈백 소파와 의자도 곳곳에 많이 놓여 있다. 잠시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숲향이 가득 느껴진다. 봄볕이 더 따뜻해진 어느 날, 낮잠 잠깐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개운해질 게 틀림없다.

숲길 곳곳에는 소품으로 마련해 놓은 포토존들이 있다. 스냅사진이나 웨딩사진 촬영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 뒤쪽으로는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맨발 걷기 체험이 가능한 흙길도 있다.

일상에 지쳐 내 마음에 빨간불이 커졌다면 ‘초록불’로 바꿀 수 있는 곳이다.



● 토피아랜드 여행 팁: 경남 남해군 창선면 서부로 270-106. 이용 요금은 성인 5000원, 청소년/경로 4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13세 이하) 3000원이다. 남해군민은 할인해 준다. 운영 시간은 하절기(4~9월) 오전 9시~오후 7시, 동절기(10월~3월) 오전 9시~오후 5시. 반려동물은 입장할 수 없다. 취사는 불가능하지만 가벼운 도시락은 지참해도 된다.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