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휴전의 가치
도시국가 간 전쟁이 잦았던 고대 그리스. 기원전 776년 이곳에서 스파르타, 엘리스, 피사 3국이 4년마다 최고의 신 제우스를 기리는 올림피아 제전을 열기로 협약을 맺었다. 오늘날 세계 최대 행사인 올림픽 대회의 기원이다. 제전을 전후한 3개월 동안은 제전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투 등 모든 적대 행위가 중단돼 일시적이나마 평화가 보장됐다.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는 뜻을 가진 ‘신성한 휴전’(에케케이리아·Ekecheiria) 전통이 생겨났다.
이러한 의미를 살린 게 유엔이 1993년부터 2년마다 하계·동계올림픽에 앞서 채택하는 휴전결의안이다. 올림픽 기간에 전 세계의 분쟁을 멈춰 평화를 이루자는 취지다.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는 193개 회원국 합의로 올해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패럴림픽 폐막 7일 후까지(1월 28일~3월 20일)를 휴전 기간으로 선포했다. 그런데도 지난달 24일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처럼 휴전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열린 1994년 내전 중인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민간인 수십 명이 대규모 폭격에 사망했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일에 러시아는 조지아와 전쟁을 일으켰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평화로운 시간을 통해 화해하며 가슴 뭉클한 인류애를 꽃피우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부터 유럽 서부 전선 곳곳에서 펼쳐진 ‘크리스마스 휴전’이 그랬다. 당시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은 성탄절을 맞아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는커녕 양측 참호 사이 무인지대에서 만나 술과 음식을 나눠 먹고 캐럴을 부르다 헤어졌다. 어떤 곳은 축구 시합을 벌였으며 공동으로 전사자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1969년 나이지리아는 국민이 ‘축구 황제’ 펠레의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이틀간 내전을 중단했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피란민의 대피를 위해 일부 지역에 대한 임시 휴전을 선언하고도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 국제사회의 반발과 원성을 사고 있다. 참혹한 전쟁은 인간과 문명을 황폐화시킨다. 현대 전쟁은 침략국과 승전국에도 큰 피해를 입힌다. 러시아가 먼저 전쟁을 그치거나 양국이 하루빨리 완전한 휴전협정을 체결하면 좋겠다. 노약자와 젊은 군인의 안타깝고 아까운 희생이 더는 없기를 바라서다. 69년째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머나먼 땅 우크라이나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