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해변에서 낭독극 매력에 푹 빠져 보세요~
의자에 앉은 배우들의 목소리만 공연장을 채운다. 움직임도 무대 장치도 없지만,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대사가 오간다. 배역에 집중해 눈물을 흘리는 배우도 있다. 낭독극. 목소리 뿐이지만 관객의 몰입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시를 음송하는 것을 듣는 것이 연극의 시작입니다. 무대가 발달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중심으로 이동했지만, 듣는 것에서 오는 문학성이 있습니다.” 부산의 공연기획·제작사인 예술은공유다 심문섭 대표는 낭독극이 가진 매력을 이야기했다. 심 대표는 지난해 문을 연 스튜디오형 공연장 어댑터플레이스에서 꾸준히 낭독극을 공연하고 있다.
공연장 ‘어댑터플레이스’
매월 마지막 화요일 공연
‘들리는 것’으로 연극 관람
무대극의 ‘설계도’ 의미도
심 대표는 “듣는 것으로 회귀한다는 개념에 더해 다른 공연장과 달리 제한된 극장이라 ‘들리는 것’으로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작전을 짰다”고 했다. 2021년 어댑터플레이스에서는 ‘앙드로마끄’ 등 ‘낭독공연 배우열전’을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12월에는 희곡 낭독공연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오프라인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관람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공연예술단체 반올림과 함께 만든 이 작품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대본만으로 낭독극을 만든다는 것은 연극 공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우선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통상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데 2~3달이 걸리는 것과 비교해, 텍스트에 집중하는 낭독극은 연습부터 공연까지 시간을 모두 더해도 2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낭독극은 배우들에게 시간적으로 부담이 적어, 제작자는 연기도 좋고 딕션도 좋은 배우를 원하는 대로 캐스팅할 수 있다. 서로의 일정으로 한 번도 무대에서 만나지 못한 배우들이 연기를 함께하는 기회도 생겼다. 신구세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배우들이 만나 연기의 초심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또 배우가 자신을 재훈련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동시에 낭독극은 무대극의 사전 제작 단계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낭독은 연출적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한다. 대본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무대에 가져갈 수 있을 것인지 구체화하고 점검할 수 있다. 극단의 입장에서 낭독극은 본 공연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행위이면서 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검증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댑터플레이스에서 진행되는 낭독극은 연출을 따로 두지 않는다. 연습감독이 대본을 보고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한다. 첫 연습에서 배우들이 대본을 읽는 것을 보고 배역을 조정한 뒤에는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공연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약 50명 정도의 배우가 공연에 참여했는데 ‘낭독 공연을 끝내면 행복감이 이틀이 간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낭독극의 다양한 가능성을 본 심 대표는 낭독 공연을 본격화했다. 올 2월 ‘느릅나무 밑의 욕망’을 시작으로 △3월 ‘세일즈맨의 죽음’ △4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5월 ‘우리읍네’ △6월 ‘산불’ △7월 ‘밤으로의 긴 여로’ △8월 ‘12인의 성난 사람들’ △9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10월 ‘정의의 사람들’ △11월 ‘애나크리스티’ △12월 ‘시련’을 낭독극으로 올릴 예정이다.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밤, 광안리 바다를 바라보며 낭독극을 감상하는 무대는 단골 관객도 꽤 확보했다. 이달 공연은 매진됐고, 오는 21일에는 4월 공연 티켓 예매를 연다. 낭독극이 연극 공연으로 이어지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나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무대극으로 작품화할 예정이다. 8월 공연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무대화 사전 점검 차원에서 낭독극을 진행한다.
심 대표는 “처음이라 연극을 중심으로 낭독 공연을 진행했는데 향후 뮤지컬 등을 위한 음악 낭독극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정기적인 낭독 공연을 통해 창작자 발굴, 관객 개발, 공연질 향상, 지역 특화 문화브랜드로 선순환이 이뤄져 지속가능한 연극 문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매달 마지막 화요일 해질 때는 낭독극 관람을 위해 시간을 빼 놓는 관객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