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인수위 백서
‘성공 그리고 나눔’, ‘희망의 새 시대를 위한 실천과제’. 15년, 10년 전에 나온 말이지만 지금 들어도 좋다. 초심을 유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명박·박근혜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각각 펴낸 백서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인수위는 활동이 끝난 후 30일 안에 활동 경과 및 예산 사용 내역을 백서로 공개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보궐선거를 통해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인수위가 없어 백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걸 두고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은 “문재인정부에선 인수위 없이 하다 보니 공약을 거의 다 국가 주요 정책으로 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많이 나왔다”라고 꼬집었다.
인수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수위원장은 이명박정부 때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이 아닐까 싶다.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출신의 이 위원장은 “Orange를 ‘오렌지’가 아니라 원어 발음에 가깝게 ‘오륀지’로 외래어표기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알고 보니 이 전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MB정부 ‘고소영 내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점령군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정권 교체 후 들어서는 새 정부의 인수위를 하도 ‘점령군’이라고 해서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수위는 ‘섀도 캐비닛’이라고도 한다. ‘인수위 26명’에 포함된 인사들은 다음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인수위원이 그대로 정부에 입각해야 국정 혼란이 줄어든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역대 정부 인수위 참여 인사들은 한결같이 “인수위 두 달이 차기 정부의 성패를 가른다”고 입을 모은다.
인수위는 선거 기간에 내세운 공약을 가다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수정·보완·폐지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전임 정부에서 한 것은 무조건 악이고 자신들이 선이라는 생각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김영삼정부 시절 정원식 인수위 위원장도 “국정 운영에서 정책의 연속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가 다 잘못됐다고 단절시키기보다는 연결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연속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 백서가 오는 6월이면 세상에 나올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이 백서는 어떻게 평가받을까. 지난 역사에서 배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써내려 가길 바란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