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지역언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발이 묶이고 날씨 또한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모바일로 <뉴욕타임스>를 뒤적이는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불평등 정도를 재려면 나무 수를 세 보라’라는 제목의 지역 기사였다.
미국 뉴욕은 세계 경제의 중심지라는 위치에 걸맞게 성공과 실패, 부와 빈곤이라는 양극단이 공존하는 대도시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화려한 저택과 할렘의 쇠락한 건물은 기회의 도시 뉴욕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한다.
<뉴욕타임스>, 지역 대변지 역할도 충실
3·9대선에서 지역 이슈 뒷전으로 밀려
자치분권·균형발전 같은 의제뿐 아니라
지역민 소소한 관심사에도 신경 써야
이 기사는 뉴욕시 전역의 수목과 녹지대 분포를 통해 도시에 만연한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루었다. 부유층이 사는 거리일수록 나무와 녹지 공원이 더 많고, 빈곤 지역 거주자는 녹지 부족으로 여름이면 다른 지역보다 더 뜨거운 열기의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녹지대 분포의 격차는 여름날의 무더위뿐 아니라 공기 오염 수준, 취약층의 건강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이 ‘도심 열섬’ 지역은 빈곤층 거주지이자 비만율, 호흡기와 혈관계 질병 수준도 높은 곳이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녹지의 불평등 문제 대처 방안으로 도시 전역의 나무 심기 운동, 저소득 노약 계층에 대한 에어컨 임대, 지붕에 흰색 페인트 칠하기 등 시 정부와 NGO 차원에서 전개되는 여러 조치들의 효과와 문제점도 짚었다.
이 기사는 무엇보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라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 엘리트층이 보는 영향력 있는 언론사이다. 국제 정치 역학과 세계 경제를 논하던 이 권위지가 섹션의 머리기사로 ‘고작’ 뉴욕 도심의 가로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은 좀 뜻밖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떤 신문사이든 거점으로 삼는 도시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를 무대로 삼는 권위지이면서 뉴욕이라는 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시민에게 지역신문의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다. 녹지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기반 도시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중시한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3·9대선이 끝났다. 원래 대선마다 지역균형발전 문제는 후보자 공약에서 중심 의제로 다루어진 적은 흔치 않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지역 이슈가 찬밥 신세였던 것 같다. 원론은 무성했으나 후보자마다 이렇다 할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가균형발전과 분권을 늘 주장해 온 지역언론으로서는 맥이 빠지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역언론이 그동안 지역 이슈를 대하는 자세 역시 이번 기회에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 언론사들은 정권 교체기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도권 중심의 중앙집중적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큰 제도적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의식 위에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등의 거대 담론이 지역 의제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역언론이 구상하는 지역의 의제가 과연 주민의 관심사와 어느 정도 일치할까?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지역에 대한 거주민의 관심도를 읽는 한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첫 지방선거를 치른 1995년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8년을 제외하면 지역 대표자를 뽑는 이 중요한 투표에서 참여율이 50%대를 넘은 적이 없다. 지방자치와 지역 발전이라는 막중한 의제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주민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지역언론이나 정치권이 분권과 발전이라는 먼 미래의 일에만 몰두하고, 현재 주민의 직접적인 관심사는 소홀히 여겼다는 징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제도 개혁에 몰두하는 것은, 이렇게 하면 이 틀 안에서 기업이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결국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효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권한 강화와 발전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는 자본과 일자리, 랜드마크급 건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삶을 결정하는 이슈는 무수하게 많다. 물론 일자리와 공항도 중요하지만, 주택가 도로, 가로수 관리, 도시 경관, 주차장, 쓰레기, 소음, 도로 표지판, 대민 행정 등의 ‘사소한’ 문제도 주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 역시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지역언론은 지역과 중앙 간의 권력 구조 개혁이란 거창한 문제뿐 아니라 이처럼 작은 문제도 지역 주민의 절실한 관심사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언론이 한방을 노리고 큰 목소리를 내기는 쉽다. 그러나 언론이 이 작은 이슈들을 다루려면 꾸준하게 현장으로 뛰어들어 발로 뛰는 노력이 필요하다. <뉴욕타임스>가 도심 가로수 같은 ‘사소한’ 일에 그렇게 큰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곰곰이 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