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화의 위기… 영상도시 부산 갈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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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문화부 차장

보고 싶은, 혹은 봐야 할 영화·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증후군’(방대한 콘텐츠 앞에서 나타나는 결정 장애로, 실제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뭘 볼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현상)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넷플릭스뿐이 아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들은 평균 2.7개의 서비스를 구독(올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중이다.

영화를 담당하는 기자도 주말이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번거롭지만 외출 준비를 한 뒤 극장에 갈 것인가, 집에서 편안하게 OTT를 볼 것인가. 코로나19 이후 개봉작이 줄어든 데다 상영관 내 취식도 제한된 탓에 식사 시간대까지 피하고 보면, 영화관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한국영화의 경우 현재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만 100편이 넘는다고 한다. 대작들조차도 오미크론 변이 확산 후 개봉일을 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국내 영화산업 위축
‘메타버스TF팀’ 만든 영화의전당
부산영상위, IP 고도화 지원 나서
시 용역 통해 실질적 대안 찾기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성적표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지난해 12월 개봉 뒤 750만 명이 넘는 국내 관객을 동원했다. 기자가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도 삼일절에 개봉한 ‘더 배트맨’이다. 음습한 고담시를 스크린에 재현해낸 압도적인 미장센, 속도감 넘치는 차량 추격 신, 스피커를 통해 낮게 깔리는 너바나의 음악까지 충분히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그러나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탓이었을까. 176분이라는 러닝 타임은 과하다 싶기도 했다.

지난 주말엔 ‘방구석 관람’을 택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최다(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파워 오브 도그’를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봤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서부극인 척 하는 영화의 장르는 알고 보니 스릴러에 가까웠고, ‘대체 이거 뭐지?’라는 의문과 여운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봤더라면 주인공이 가리킨 산세 속 개의 형상을 제대로 찾아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중간에 밥까지 먹어가며 끊어 보기를 했음에도 영화가 가진 반전 묘미는 조금도 반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동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일부 10대들은 굳이 영화를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할 이유를 못 느낀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코로나19 이후 급성장한 OTT 플랫폼으로 자본과 인력도 쏠리는 모양새다. 오는 25일 공개되는 애플TV+의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는 무려 10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한다. ‘오징어게임’ 제작비(약 250억 원)의 4배 수준이다.

게다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엔 ‘파워 오브 도그’ 외에도 넷플릭스의 ‘돈 룩 업’과 애플TV+의 ‘코다’ 등이 올라 있어 OTT의 강세를 실감할 수 있다. 반면, 올해 후보작에 한국영화는 없다.

영화계는 영화산업이 고사 위기라고 호소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1조 239억 원으로, 2019년의 2조 5093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방탄소년단(BTS)이 속한 가요기획사 ‘하이브’ 한 곳이 올린 지난해 매출액(1조 2577억 원)보다 작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영화시장이 금세 회복될 거란 낙관론도 있지만, 이미 대세가 된 OTT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거란 비관론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미디어·콘텐츠 분야를 담당할 가칭 ‘디지털미디어혁신부’ 신설을 공약으로 하고 있어 정부 정책의 변화도 예상된다. ‘영화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얼마 전 만난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트렌드가 너무 빨리 변해 중장기 계획을 세우기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영화의전당은 영화·영상산업 변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메타버스TF팀’을 구성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OTT 플랫폼에 대응하는 다양한 콘텐츠 발굴을 위해 ‘부산 스토리 IP(지식재산) 고도화·판로 개척 사업’을 신설해 1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부산시도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영상도시 발전계획 수립 연구 용역’에 나선다. 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지역 영상산업 인프라 활용, 선순환 구조 구축을 위한 정책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이 명실상부한 영상산업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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