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산은 회장은 '도시의 승리' 다시 읽으시길…
김종열 경제부 차장
2016년 봄, 서울 경제팀에서 근무했다. 당시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가덕도와 밀양의 경쟁이 뜨거웠다.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만나는 (서울)사람 열에 여덟, 아홉으로부터 같은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 좁은 나라에 굳이 새 공항이 필요하나요?"
그들은 중대한 국가정책의 결정이 지역 배려와 정치적 고려라는 감상적 논리에 휘둘리는 것을 걱정했다. 무릇 백년지계는 그렇게 결정되어선 안된다. 무엇보다 경제논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국가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사람도 몇 살지 않는 그저 그런 지방에 인천공항에 비견될 제2의 관문공항을 만들자는 ‘비경제적’ 억지를 부리니, 그들의 근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동걸 “산은 부산 이전은 퇴보” 주장에
일부 중앙 언론도 낡은 논리로 ‘맞장구’
정부 주도 ‘지방行’은 경쟁력 하락 초래?
수도권 과밀화가 되레 국가경쟁력 하락
그러나 수십 년간 이어진 그들의 논리는 국토의 기형적 발전을 초래했다. 쪼그라든 지방은 영양실조를 호소하고, 과밀해진 수도권 또한 깜냥을 넘어선 비만에 버거워 한다. 이처럼 과도한 지역격차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데도 그들의 신념에는 한치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2022년 봄, 그들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를 두고 다시 걱정을 쏟아낸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근본적인 인프라와 기술을 갖춘 후 금융이 도와줘야 한다”며 “(산은의 부산 이전은) 말이 마차 앞에 있어야 하는데 마차를 말 앞에 두고 끌어보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은 노조 역시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각 기관의 경쟁력 상실을 넘어 대한민국 금융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일부 중앙 언론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전에 따른 기회비용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금융도시 부산을 위해 이 공약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태세다.” “상장사의 본사 70%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은행의 지방이전은 업무 비효율만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마치 산은이 부산으로 내려오면 당장 큰일이나 날 것처럼 부산을 떤다. 무엇보다 ‘상장사의 본사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산은을 서울에 둬야 한다’는 주장은 본말이 바뀌었다.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는 마당에,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공공기관 이전을 반대한다는 논리야말로 ‘마차가 말 앞에 선’ 것이다. 산은이 서울에 남을 것이 아니라, 산은의 부산 이전이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의 남하(南下)를 이끌어야 한다. 당장은 비대면회의 등의 방법으로 소통하면 된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업 간, 기업 내 소통방식도 많이 변했다. 일부 기능은 서울에 남겨도 된다.
그간 산은이 (인프라 등을 갖춘) 서울에 있어 과연 얼마나 제대로 기능했는지도 짚어볼 대목이다. 3년여를 끌다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건만 해도 그렇다.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불허를 예상 못한 산은은 안일한 판단을 아파해야 한다. 대우건설 헐값 매각 논란도 여전히 구설수가 끊이질 않는다.
일각에서는 2017년 전북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의 사례를 실패로 단정지으며, 산은의 부산 이전이 제 2의 국민연금 사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서울의 금융시장과 동떨어진 탓에 인력 수급 문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2019년 11.3%(역대 최대), 2020년 9.7%, 2021년 10.8%(역대 두 번째)로 3년 평균 10% 이상의 호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외부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지만 ‘실패’라고 규정하기엔 무색한 측면이 있다.
“‘각국 정부는 특정 장소들을 선호해서는 안 된다. 도시가 자신만의 경쟁 우위를 찾아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부산 이전 논란에 대한 질문에 이동걸 산은 회장이 언급한 책,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가 쓴 ‘도시의 승리’에서 눈길을 끈 부분이다.”
최근 한 중앙 언론사 칼럼의 일부다. 책을 인용한 이 회장의 의중을, 그리고 해당 칼럼의 의중까지도 잘 알게 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2022년 대한민국의 지방도시들이 과연 스스로 자신만의 경쟁 우위를 찾아낼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글레이저 교수는 해당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서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재를 끌어오며 번영한 도시로서 위상을 높였다’고 적었다. 뒤집으면, 지방은 수십 년간 그들의 인재를 서울에 죄다 뺏기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동걸 회장께 서문을 포함해 다시 한 번 책을 정독하시길 권한다.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