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석양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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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아내와 자식들에게 매우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있었다.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아버지였다. 어느 날 이 아버지가 문득 깨친 바가 있어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한다. 이제부터는 독선적인 아버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가족들과 대화하고 서로 소통하는 가장이 되겠노라고. 그래서 아무래도 이 집이 터가 안 좋은 탓에 가족들과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으니 큰아들 집으로 옮기겠다고 이야기한다. 큰아들이 묻기를 그러면 우리 가족은 어디로 갑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작은아들 집으로 가거라 했다. 이번에는 작은아들이 묻는다. 그럼 우리 가족은 어디로 갑니까? 아버지가 또 말하기를 딸네 집으로 가거라. 딸과 사위가 또 묻는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그래서 아버지 가로되 당분간 어디 가서 노숙을 하든 알아서 하거라. 아버지가 지금껏 가족들과 소통을 못했다면 이제부터 제대로 소통을 하면 된다. 사람이 문제지 굳이 집을 옮길 일이 아닐뿐더러 그런 태도야말로 불통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닌가.

윤 당선인, 소통 위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 추진

과거 방식대로 경호하며
국민들 접근 막는다면
국민 소통은 궤변에 불과

마트서 장보는 대통령 보고파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의 국방부 부지로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이사 비용이 윤 당선자 쪽은 400억 원 정도라고 주장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5000억 원에서 1조 원은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돈이 얼마가 들든 필요하다면 써야 한다. 그런데 후보 시절 윤 당선자가 내건 공약은 광화문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는데 왜 갑자기 용산으로 가겠다는 것인지 그 내막이 궁금하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약속했던 일이다. 문 대통령이나 윤 당선자나 그 이유는 경호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있는 곳 주변으로 500m인지 얼마인지 이내는 휴대전화가 모두 불통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그러니 대통령이 광화문으로 간다면 인근 주민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런데 권위적인 대통령,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방식의 경호를 이제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과거에 하던 대로 경호를 하고 국민들의 접근을 막으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후보들은 시장에 가서 국밥도 먹고 어묵도 먹고 국민들의 손도 잡고 그랬었다. 그때는 경호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대통령이 되니까 갑자기 국밥에 든 순대가 수상해지기라도 하다는 뜻인가? 윤 당선자의 발표를 들어보니 청와대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겠다면서 용산에 또 하나의 청와대를 짓겠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굳이 대통령 집무실을 옮길 필요 없이 그냥 청와대를 이용하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청와대보다 더 일반 국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진정으로 국민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대통령이 청와대를 사용하되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집무실만 사용하고, 그 대신 청와대 정문을 활짝 열어 초등학생 손주들 손을 잡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누구나 꽃구경도 오고 단풍놀이도 오게 하면 된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퇴근 후에 마트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직접 사 간다는데 우리 대통령은 왜 안 된단 말인가.

진심인지 가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고 말했다. 신동엽 시인의 ‘석양 대통령’이라는 작품을 읽으면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보았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경호 때문에 국민들과 만나지 못한다면 청와대든 국방부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디든 좋으니 마당에 마주 앉아 대통령과 마음을 열고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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