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 후보를 발표하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이후에도 계속 대치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23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관계 개선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견을 보였던 인사권 문제와 관련,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도 동의하는 인사를 한은 총재로 발탁하면서 회동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회 전달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청 “당선인 측과 의견 수렴해”
윤 측 “감사위원 임명 명분 쌓기”
양측 신경전 벌이면서 교착 국면
충돌 반복… 민생 공백까지 우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문 대통령은 오늘 참모회의에서도 ‘(윤 당선인과의 회동을)언제든 조건 없이 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날 인선을 통해 문 대통령이 다시 회동을 위해 ‘화해 제스처’를 보인 만큼 신구 권력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조금씩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인사 발표가 나오자마자 “한은 총재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며 반박했다. 윤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창용 씨 어때요’ 하니까 (제가)‘좋은 분이죠’라고 한 게 끝”이라며 “협의를 거쳐 추천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이철희 수석과 통화했느냐’는 질문에는 “발표하기 한 10분 전에 전화가 와서 발표하겠다고 해서 (제가)‘아니 무슨 소리냐’며 웃었다. 일방적으로 발표하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며 “저희는 뭐 ‘추천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인사’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장 실장은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현 정부의 명분 쌓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현재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집무실 이전 문제와 별개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일단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대 난관인 ‘집무실 이전’ 문제 역시 회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에서는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승인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상황에서 회동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의 최측근인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중요 부분에 대해서 합의가 안 된다면 굳이 만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나”라고 회동이 필요없다는 뜻까지 밝혔다.

결국 집무실 이전과 이를 위한 예비비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한은 총재 등 인사권 문제까지 꼬이면서 당분간 교착 국면이 해소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신구 권력의 갈등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향후 인수위의 중요 결정 사항마다 청와대와 인수위 사이에서, 또 여야 사이에서 충돌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 이양기에 벌어진 신구 권력의 정면 충돌이 국민 불안을 키우면서 민생 공백까지 우려된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