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일 대통령 집무실의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공식 발표한 뒤 온갖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권도 여야로 갈려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사용 협조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뒤로는 신구 정권 간 힘겨루기 양상마저 띠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당선인의 의지가 워낙 강고한 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국민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는 곳에 따라 사고 체계 영향 받아
윤 당선인, 대통령실 이전 이유 제시
‘서울 집무실’ 고정관념도 바꿔야
대통령의 공간은 전 국토가 대상
부산, 광주 등 지역에도 확보 필요
소통 실현은 전 국민이 체감해야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 위치에 대해서는 국가 전체의 틀에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윤 당선인이 새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주변 개발 계획 등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모양이지만, 서울 바깥의 다른 지역에선 이는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할 뿐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된다는 팩트만 보면 결국 서울 안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만 바뀌는 것이다. 무심코 말하는 비수도권, 즉 수도권 바깥 지역에서 볼 때는 지금의 청와대나 새 집무실이 있게 될 용산이나 모두 서울 안으로, 오십보백보다.
당선인이 기존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수차례나 밝힌 이상 이번 기회에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꼭 서울에서만 대통령이 집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때가 됐다. 국민과 평소 소통하면서 국민 속에 있겠다는 당선인의 의지 표현이 반드시 서울 시민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터이다. 집무실 이전 방침에는 공감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속전속결식으로 시간에 쫓기듯 해야만 하는 일인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선인의 소통 실현은 한 동네가 아니라 전 국민이 대상이어야 한다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집무실 위치가 아니라 소통 실현의 국민 체감이 관건이다. 수도권에만 그치는 소통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당선인이 자신의 강렬한 소통 의지를 집무실 이전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면 먼저 수도권이라는 생각의 틀부터 깨뜨려 보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윤 당선인이 세종 집무실 설치를 거듭 확인하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무회의도 세종에서 열겠다고 밝힌 점은 고무적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참에 세종 집무실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기류가 많다. 새 대통령이 국민과 실무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세종 분원이 앞으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어렵게만 여겨지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한 번 시도해 보고 나면 다른 곳의 활용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세종 집무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선거 운동 당시 당선되면 세종 집무실을 조속히 설치해 세종시에서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다 더 추가한다면 새 대통령은 부산, 광주 등 서울과 세종 외에 전국 다른 지역에도 어느 정도 규칙성 있게 머물면서 지역민과의 소통에도 힘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호나 보안 등 까다로운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미 예전의 권위적인 틀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 이상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실무적으로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싶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미 윤 당선인이 스스로 명확하게 제시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당선인이 지난 20일 집무실 용산 이전을 직접 발표하면서 언급한 명제다. 어떤 공간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의식 구조나 사고 체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지금 청와대의 구중궁궐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 의식에 빠져 국민과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한 것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선인이 생각하는 새로운 공간은 당연히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과의 소통이 목적이라면 대한민국 전체가 그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선거 운동 때 다소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의지 과시나 서울의 정치독점 시대 종결 등 다른 국가적 난제 해결에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의 의식 자체야 개인 차원의 영역이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온 나라에 미친다. 당선인의 언급처럼 그런 의식이 공간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면 그 공간은 이제 지역이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 대선을 통해 표출된 시대와 국민의 요구가 그렇다. 그게 바로 당선인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관건이다.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