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존 위해서는 자연에게 권리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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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 조효제

우리가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너무 거대해서 못 느끼는 문제다. 2020년 6월 북극권인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갔고, 2021년 7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 기온은 54.4도를 기록했고, 2022년 1월 호주 서부는 50.7도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기록적 기록’이었다. 현재의 지구인들은 2년여 마스크를 쓰고 전대미문의 코로나19를 겪고 있다. 팬데믹, 산불, 폭염, 혹한, 사이클론, 토네이도가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후·생태·보건·경제·사회 문제가 총수렴되고 있는 문명사적 위기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유의미하게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년, 짧으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무서운 진실 앞에 우리는 넋을 놓고 있다.

풍족한 삶 누리려 지구 총체적 파괴 땐
자연 역습으로 인간 말살 낳을 수 있어
베트남 킴푹 사진, 환경·인권 파괴 담아
환경 파괴 극복 위해선 새 접근 방식 필요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눈앞의 풍족한 삶을 위한 지구행성의 총체적 파괴는 자연의 역습으로 인한 ‘인간 말살(제도사이드)’을 낳고 있다고 경고한다. 환경 파괴가 인간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에코사이드’ 개념이다. 인권과 사람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선 자연과 생태를 지켜야 한다는 거다. 환경 말살은 결국 인간 말살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한가의 예다. 1991년 낙동강에 페놀 원액 수십 톤이 유출됐다. 페놀 희석액을 마신 대구 밀양 부산 수백만의 주민들은 구토 설사 두통 복통을 겪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오염사건’이었다. 페놀이 어떤 것이냐 하면 나치가 ‘인도적 살인’으로 수인들을 처형할 때 쓴 치명적 약물이다. 이를 30여 년 전, 나치 시절 얘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 지금 치르고 있는 기후 위기가 환경 파괴와 인권 파괴의 종합판이기 때문이다. 2019~2020년 호주 산불 때 척추동물 30억 마리가 불에 타 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하나의 장면을 제시한다. 1972년 베트남 한 마을에서 공중폭격을 피해 알몸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던 9살 소녀 판티 킴푹의 사진이다. 베트남전쟁의 상징이 된 이 사진을 과거의 한 장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 소녀는 네이팜탄이 떨어진 후 신체 30%에 심한 3도 화상을 입었는데 이후 14개월 동안 17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절규하며 뛰어오는 그 소녀의 헐벗은 모습이, 지금 인류가 처한 모습이라는 말이다. 이 사진은 환경 파괴와 인권 파괴를 함께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자 현재적 기록이라는 거다. 전쟁은 최악의 환경·인권 파괴다.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이 그랬고,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걸프전쟁,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나이나전쟁이 그렇다.

2010년 이후 에코사이드를 국제범죄로 격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해양 파괴, 산림 파괴, 대지와 수질 오염, 대기 오염을 범죄로 규정하려는 운동이다. 2021년 그 법안의 초안이 작성됐다.

지금 인류는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자연에게 권리를 줘야 한다. 인간의 배려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거다. 로마 클럽은 1972년 이미 ‘성장의 한계’를 말했다. “성장의 목표가 아니라 균형의 목표 쪽으로 사회의 방향성을 재조정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눈앞의 심각한 위기에 대한 이해력, 상상력, 정치적·도덕적 결의를 ‘최고 수준’으로 발휘해야 한다는 거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유발한 자해행위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탈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적당한 성장’을 이미 제안했다. 이것이 사회-생태 전환의 핵심이다. 인류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문제에 부닥쳐 있다. 성장이 유발한 것은 인간 파괴 위기다. 아찔하고 심각한 불평등이다. 2019년 현재 세계 갑부 10인의 부는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의 국부보다 더 많은 실정이다.

인류세를 건너기 위해 책은 3가지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총체성, 역사성, 전지구성이다. 지금의 기후·생태 위기는 지난 5세기 동안 전지구적으로 누적된 대차대조표의 총결산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조효제 지음/창비/412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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