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구 권력 갈등 점입가경, 국민은 불안하다
유례없는 신구 권력 갈등이 출구를 찾기는커녕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습이 점입가경이다. 집무실 이전 문제에 이어 한국은행 총재 지명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양쪽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다. 법무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와 감사원 감사위원 지명 문제를 놓고도 과민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 모두가 양쪽의 대치가 깊어져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꼴인데,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문 대통령이 24일 “인사하고 덕담하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며 윤 당선인에게 조속한 회동을 촉구했다. 갈등의 속사정이야 어떻든 이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다. 신구 권력 양쪽이 갈등 국면을 더 이상 방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사권 등 놓고 곳곳서 정권이양 차질
서둘러 만나 협치·통합 민심 받들어야
특히 이번 갈등 국면에 한은 총재 지명 문제까지 엮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은 총재는 향후 4년간 국가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막중한 자리다. 임면권은 현 정부에 있지만 차기 정부의 의견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청와대는 “당선인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고, 당선인 측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한다. 어째서 이런 실랑이가 자꾸 생기는지 국민들은 의아할 뿐이다. 자칫 총재 공백 사태가 불거진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가이고 국민이다. 여전히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불투명성이 국내 물가 급등과 경제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한은 총재 인사는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로 권력 갈등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여기다 인수위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사실상 거부해 정부 이양 작업도 차질을 거듭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검찰 개혁과 독립성 문제를 두고 줄곧 충돌을 빚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윤 당선인 측은 또 한은 총재의 임명에 이은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도 현 정권의 지나친 인사 개입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감사위원 7인 가운데 2명이 공석이고 5명 중 3명이 현 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인데, 양측에서 각 1명씩 추천해도 현 정권 쪽이 과반이라는 것이다. 정권 이양의 난관으로 꼽히는 감사위원 인사 문제까지 얽힌다면 갈등의 출구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권 이양이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갈등과 분열이라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 도지는 모습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이유야 어떻든 양쪽이 회동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서로 감정이 상한 탓이 크다고 본다. 불필요한 감정을 자극하거나 밀어붙이기식의 언급들은 자제해야 한다. 신구 권력이 통합과 협치의 시간을 갖기에도 모자랄 판에 되레 안보·민생 공백, 사회 혼란을 부추겨서야 될 일인가. 이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서둘러 만나 엄중한 민심을 받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