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핵’ 카드 만지작… 서방 개입 임계점 봉착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점차 커짐에 따라 미국 정부가 비상 계획 마련에 들어갔다. 계획을 통해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시 미국을 비롯한 나토가 개입한다는 군사개입 레드라인을 설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주도로 구성된 ‘타이거팀’(Tiger Team)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타이거팀은 특수사안의 해결을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내에 구성되는 긴급 태스크포스팀이다.
러 대량살상무기 사용 우려 고조에
미 ‘타이거팀’ 구성해 대비책 준비
나토 우크라에 관련 보호장비 지급
미 국무부 “푸틴은 전범” 공식화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을 겨냥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 소형 전술 핵무기를 쓴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나토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선택지는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즉,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시 직접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다만, 이 관리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때 미국이 꺼내들 대응책과 관련한 논의 내용에는 입을 닫았다고 NYT는 전했다.
다른 한 관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데 열성적이지만 개입을 촉발할 문턱(한계점)을 면밀히 점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그런 한계점이 어떤 식으로라도 나타난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기존 입장을 뒤집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토는 러시아의 핵·화학무기 위협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보호장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이날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전했다. 옌스 스톨텐버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합의할 전망이라면서 추가 지원에 화학·핵무기 보호 장비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 우려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해도 현실적이지 않은 선택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한 달째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점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세를 바꾸려고 특정 지역에서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생화학 무기, 소형 전술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이날 텔레그램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며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면 세계는 핵 재앙의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도 지난 22일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국가안보개념’은 국가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을 때만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규정한다”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보다 위력이 작은 소형 전술핵을 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NYT는 살상력이 훨씬 작은 핵무기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전쟁범죄자’라고 규정한 데 이어 미 국무부도 23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고 공식 규정했다. 미 국무부는 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한 처벌을 고려하고 있다.
고든 브라운, 존 메이저 등 전 영국 총리들은 푸틴 대통령을 국제군사재판에 세우자는 온라인 청원에 참여했다. 국제 청원사이트 아바즈에서 진행 중인 이 청원에는 현재 13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