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바퀴 달린 컴퓨터, 전기차의 혁명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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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산 전기차를 샀다. 아내에게 멀쩡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꿔야 하는 이유를 몇 차례 설명했다. “유지비가 거의 안 들고, 매연도 나오지 않아 세상에 미안하지 않다”는 차량의 장점과 함께 “더 늙기 전에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설득해 겨우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온갖 앱을 깔고, ‘밥’(전기) 먹일 충전소를 찾아 헤매는 게 번거로웠다. 하지만, 2주일 뒤 아내가 다니는 경주 공장에 완속 충전기를 설치하고, 집 주변 급속충전소를 파악하면서 전기차 전도사가 되고 있다. 전기차 생활 4개월 만에 가족 누구도 내연기관차로 돌아가자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한국GM의 글로벌 브랜드 쉐보레는 2022년형 볼트 EV와 볼트 EUV 고객 인도를 앞두고 버추얼(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와 협업한 광고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고 28일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GM의 글로벌 브랜드 쉐보레는 2022년형 볼트 EV와 볼트 EUV 고객 인도를 앞두고 버추얼(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와 협업한 광고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고 28일 밝혔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자동차 기본 성능이 압도적이다. 고급 외제차에서나 이야기하는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이 5.2초로 발군의 기량을 보인다. 남천동에서 해운대 방향 광안대교 진입 구간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순간적으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기분마저 든다. 다가올 세상과 신기술을 먼저 경험하는 것 자체가 미래에 사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사람들과 만나면 비싼 외제차도 아니지만, 먼저 “나 차 바꿨어”라고 자랑하고, 전기차에 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주변 친구나 동생들까지 “운전 한번 해 보자”는 부탁이 쇄도한다. 몇몇은 벌써 전기차 대열에 동참했을 정도다.


■원거리 통근 문화를 바꾼 전기차

아내는 회사가 있는 경주까지 125km를 매주 2회가량 출퇴근한다. 일주일에 최소 500km, 한 달에 2500km 이상을 주행한다. 차선과 차간 거리 맞추기, 차선 변경까지 자동으로 하는 운전보조(자율주행 레벨 2) 첨단 기능으로 장거리 운전에 대한 위험성이 낮아졌다. 야간 운전이나, 졸음운전에도 자율주행 기능이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포항고속도로와 같이 직선 구간이 많은 경우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 일반 주행은 자동차에 거의 일임한다. 정숙성도 큰 특징이다. 타이어 마찰음 외에는 진동이나 소음이 거의 없다. 운전 중에 음악을 들으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 풍광 좋은 카페에 있는 느낌이다.

별도로 주유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공장에 도착해 충전기를 꽂아 놓으면 비교적 싼 공장 전기 요금으로 100% 다시 충전된다.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는 유가 급등 상황에서 원거리 통근에 따른 교통비 부담이 훨씬 줄었다. 이에 더해 고속도로 톨게이트비(반값), 광안대교 통행료(무료) 부담까지 줄면서 원거리 통근 자체가 행복한 시간으로 변했다. 물론, 이동 비용이 줄면서 시외로 여행하는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전용 스마트폰 앱 '탭(TAP!)'을 통해 호출한 자율주행차가 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전용 스마트폰 앱 '탭(TAP!)'을 통해 호출한 자율주행차가 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단골 카센터 아저씨의 눈물

걱정도 앞선다. 30년 단골이었던 카센터 아저씨를 찾을 일이 없어진 점이다. 엔진과 변속기 등이 없어서 엔진 오일이나 부동액, 냉각수 등을 교체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로 제주도의 경우 2019년 전기차 보급률이 5%를 넘어서면서 정비업소가 13%가량 문을 닫았다고 한다. 2025년께에는 제주도 정비업체 87%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예측마저 나온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카센터 등의 ‘줄폐업’ 등 골목상권 붕괴 사태가 우려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울산 현대자동차, 부산 르노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부산·울산·경남에 가동 중인 엔진 관련 부품업체와 일자리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복잡한 구조를 지닌 엔진, 변속기 등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내연기관차 판매가 중지되는 2035년 즈음에는 엔진을 구성하는 6900개 부품과 이를 생산하는 부품업체는 사라지게 된다. 부품업체 수도 1/3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영세 부품업체들은 미래차 관련 기술이나 설비에 투자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수많은 부품업체 연쇄 부도와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 여파가 지역을 덮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동차 공장도 사정이 엇비슷하다. 생산라인 면적이 내연기관과 비교하여 약 50%가 감소하고 인력은 최대 70%나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높이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상당수 국가는 ‘늦어도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중지를 선언하고 있다. 그에 비례해 전기차 생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코리아스마트그리드엑스포의 한 부스에서 전기차에 자동으로 충전 플러그를 꽂아 주는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코리아스마트그리드엑스포의 한 부스에서 전기차에 자동으로 충전 플러그를 꽂아 주는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동차가 움직이는 생활 공간으로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움직이는 생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개념이 더해지며 다양한 미래 이익 창출도 기대되고 있다. 첫 번째가 자율주행. 레벨3 자율주행차가 출시되고, 관련 법이 개정되면 일부 구간에서는 사실상 ‘운전의 수고로움’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현대차는 올해 연말 제네시스 G90에 레벨3 수준의 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을 처음 적용할 예정이다. 현재 애플 등 자동차 제조사들은 2025년께 완전 자율주행차(레벨 4)를 출시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경우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여 집까지 데려다주는 무인전기차의 출현도 성큼 다가오게 된다.

향후 사물인터넷의 본격적인 도입과 함께 외부 온라인 장치와 연결하는 ‘커넥티드카’가 점차 확대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가 한군데로 모인 모빌리티 혁명이 시작된다. 자동차가 스마트폰과 같이 온라인으로 연결돼 업데이트 되면서 이용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자동차 고장 수리도 온라인에서 원격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자율주행, 무인차가 본격화되면, 이동 시간에 차량 모니터로 악기 수업을 듣거나, 영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자동차란 하드웨어가 새로운 가치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된다.


지난달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 모빌리티에서 미래 자율주행차 컨셉모델 'LG 옴니팟'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 모빌리티에서 미래 자율주행차 컨셉모델 'LG 옴니팟'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차 충전소도 없는 대학

새로운 기술에 따른 일자리 생태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2007년 스마트폰 등장 이후 산업 생태계와 세상의 변화를 떠올리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대학은 4차산업혁명, 모빌리티 혁명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 변화 속도가 너무나 느린 수준이다. 현재 대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정착할 10년 뒤에는 이동 수단의 모든 질서가 바뀐다. 부산의 상당수 대학은 캠퍼스에 전기차 충전소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기술에 대한 호기심조차 불어넣기 힘든 실정이다.

여전히 대학 학과도 기계공학 등 내연기관 중심의 커리큘럼에 안주하고 있다. 평생 뿌리산업 관련 기술을 가르쳤던 박익민 부산대 재료공학과 명예교수는 “자동차 회사가 이미 엔진 개발을 중단한 상태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내연기관 중심으로 짜여진 교육 과정을 파괴적인 수준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면서 “기계와 엔진이 아니라, 모빌리티와 소프트웨어 설계 등 창의적 개발이 가능하도록 기존의 교육 과정을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전기차·배터리 강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부울경 지역 16개 자동차 관련 학과와 고등학교 등 교육 현장은 전기차 관련 교재와 설비는 물론이고, 가르칠 교수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다. 대학이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모빌리티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선진국 기술을 베껴서 상품을 출시해 온 ‘패스트 팔로워’ 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기술을 창출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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