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폐기장 대책 없는 원전 활성화,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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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정부 업무 보고를 받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곧 설계수명이 다하는 고리 원전 2·3호기를 계속 운전할 방침이라고 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원전 활성화 공약에 맞춘 것인데, 이미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24일 인수위 보고 때 고리 2호기는 물론이고 3·4호기까지 계속 운전 준비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려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게 현실화한다면 부울경 주민은 당연히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당선인의 원전 공약에 무조건 어깃장을 놓자는 게 아니다. 당장 대책 없는 핵폐기장 문제부터 그렇다. 인수위가 원전 가동을 굳이 연장하려면 이것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순서다.

인수위, 고리 2·3호기 운전 연장 방침
영구 보관 시설 외면, 주민 반대 뻔해

사용후핵연료 등 원전 폐기물을 영구 보관·처리하는 시설은 원전에 관한 한 부울경 주민의 최우선 관심사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은 이를 공론화하기는커녕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실제 핵폐기물 저장 시설은 시급하다 못해 숨이 넘어가는 지경임은 인수위도 잘 알 것이다. 고리 1호기는 이미 저장 용량이 꽉 찼고, 2·3·4호기 용량도 한계 상황이다. 하지만 영구 폐기장은 님비 현상으로 입도 못 떼고 있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영구 시설 마련 전까지 고리 원전 내에 저장하기로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미봉책일 뿐이다. 거칠게 말하면 이는 핵폐기물을 두고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인수위는 이를 알아야 한다.

인수위가 고리 원전 가동을 연장하려면 이 문제부터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핵심은 뒤로 미룬 채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되어선 안 된다. 고리 2호기는 내년 4월 8일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3·4호기도 2024년 9월, 2025년 8월 각각 그 수명이 다한다. 윤 당선인은 고리 원전의 계속 운전 연장을 통해 손쉽게 공약을 실현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원전 활성화에 대한 확신과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핵폐기장 문제부터 해결해 놓고 국민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최소한 핵폐기물의 수도권 등 지역 분산과 같은 획기적인 대책부터 내놓은 뒤 원전 밀집화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부울경 주민을 설득하는 게 도리다.

핵폐기장의 시급성은 지역민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외 환경단체도 이전부터 입이 아프도록 말한 내용이다. ‘탈원전’을 정책 기조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요구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선 끝내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을 완전히 바꾸려고 하는 윤 당선인은 이 문제부터 정면 승부를 거는 게 맞다. 이게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원전 정책의 탈바꿈이 될 것이다. 핵폐기장 대책 없는 원전 활성화는 화장실 없이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당선인의 공약도 중요하지만, 핵폐기장 문제는 수백만 명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일의 선후가 무엇인지 숙고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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