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녀 ‘숨비소리’ 들려 드립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부산 영도 앞바다. 지난 23일 오전 7시. 잠수했다가 떠올라 휘파람처럼 깊은숨을 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길게 울린다. 해녀 하면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부산에도 해녀가 있다. 이른바 제주 해녀와 다른 ‘육지 해녀’인 부산 해녀다.
부산 해녀는 다대포, 영도, 해운대, 광안리, 기장 앞바다 곳곳을 누빈다. 수도권 등 타지 사람들이 “부산에도 해녀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 부산 해녀가 있다.
부산 해녀의 역사는 깊다. 180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서 온 해녀들이 부산 바다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출향 물질’을 했고, 일부는 정착했다. 부산 출생 해녀들도 그들과 함께하며 부산 바다에서 터전을 닦았다.
19세기 말 제주 출향 해녀서 비롯
현재 60대 미만 20명뿐 소멸 위기
본보 ‘부산숨비’ 프로젝트 시작
부산 해녀 ‘삶과 문화’ 샅샅이 기록
사하구 다대어촌계 해녀인 윤복득(73) 부녀회장은 “13살에 제주도에서 해녀가 됐는데 결혼하며 부산에 오게 됐다”며 “부모나 자신이 제주도 출신인 경우가 많고, 가족 모두 부산 출신인 해녀도 있다”고 했다.
저마다 삶이 한편의 다큐멘터리인 부산 해녀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부산시 수산정책과에 따르면 부산 나잠어업인 수는 2011년 984명에서 2021년 12월 말 기준 784명으로 줄었다. 나잠어업인은 산소 호흡 장치 없이 바다에 잠수해 빗창이나 까꾸리(갈퀴), 낫 등으로 전복과 성게, 곰피 등 해산물을 캐는 어업인, 즉 해녀를 뜻한다. 실질적으로 물질하는 해녀는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60대 미만 해녀는 부산 전체 20명에 불과하다.
영도구 동삼어촌계 해녀인 이정옥(67) 부녀회장은 “60대가 제일 젊은 나이대로 막내”라며 “예전에는 상군도 많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꾸준히 물질을 못 하는 해녀가 많다”고 말했다. 해녀는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상군은 경험이 풍부하고, 잠수 능력이 좋아 깊은 곳에서도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다. 나이가 들면 호흡이 달려 물질 빈도가 점차 줄면서 상군 자리 유지가 힘들다.
“우리가 마지막이지 싶어. 옛날에는 22명이 있었는데 이제 막내 다섯 남았어….” 수영구 남천어촌계 해녀인 노봉금(76) 부녀회장이 한 말이다. 부산 해녀 소멸 위기가 심각하다. 이대로라면 육지 해녀의 중심축이었던 부산 해녀에 대한 이야기는 박물관에서조차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
부산 해녀는 바다와 함께 성장한 부산의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가족 부양과 자식 교육을 위해 맨몸으로 바닷속에 뛰어든 부산 여성들의 이야기는 곧 현대사다. 제주도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제주 해녀 문화(Culture of Jeju Haenyeo)’가 등재됐고 해녀학교와 역사관을 비롯해 각종 체험 시설 운영과 다양한 행사를 한다. 2017년 문화재청도 해녀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지만, 육지 해녀의 문화 전승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안미정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교수는 “(부산 해녀의 경우)결국 신규 해녀를 늘려야 하는데 교육과 어업권 등을 동시에 보장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탈의실 등 기본 시설뿐만 아니라 바닷속 자원 관리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젊은 세대가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소득과 만족도가 높아야 부산 해녀 문화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일보>는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기 위한 ‘부산숨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해녀들의 물질에 동행하며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샅샅이 기록할 방침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들이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한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통로로 독자와 만난다.
장병진·이우영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