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벚꽃이 지기 전에 / 김지녀(1978~ )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떠나야겠다, 몇 번의 짐을 챙기고 푸는 동안 사랑은 몸을 옮기고 떠나야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는 하얀 꽃 그늘을 아주 거두어갔다



무릎걸음으로 달려가지만

당신은 저 멀리 검은 자루처럼 앉아 있네 내게 손짓을 하네 깨진 유리 같은 당신의 자리 그러니까 당신은 지나가는 휘파람이었겠지 여운처럼 남아 있는 구름이었겠지 아무리 불러도 잡히지 않는

길 건너 나무였겠지



내 안에서 앙상해진 나뭇가지

뒤돌아보면 제자리인 꽃잎들



나를 배웅하는 벚나무 저편으로

하늘이 천천히 문을 열고 있네



떠나야겠다,

사라지는 저녁으로부터 이 넓은 꽃그늘로부터

벚꽃이 다시 피기 전에

-시집 (2009) 중에서


삼월에서 사월 사이. 오키나와에서 피기 시작한 벚꽃은 제주를 지나 부산과 진해를 거쳐 여의도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다. 벚나무가 해안도시에 많이 심어진 까닭은 모르지만 벚꽃터널을 지나다 보면 벚꽃들의 하얀 군무가 바다로 향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눈부신 벚꽃의 계절에 서울에서 살다 부산으로 이사 온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당신은 지나가는 휘파람이었겠지 여운처럼 남아 있는 구름이었겠지’라고 떠난 이를 그려놓고, 자신 또한 ‘떠나야겠다’ 라는 결심을 해 보인다. 시인의 시어처럼 벚꽃이 지기 전에 우리도 떠나보자. 어디로? 일단은 벚꽃 그늘 아래로. 성윤석 시인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