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6·1 지방선거 공천 혁신 이뤄내야
공천헌금 관행 타파·공정한 공천 심사 필요
봉사하며 지역 발전 헌신할 참일꾼 뽑아야
중앙정치 예속화 막아 지방분권 강화하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치러진다. 2일로 딱 60일 남았다.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광역·기초지자체 단체장과 광역·기초의회 의원, 시·도 교육감을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제다. 지난 2월 1일 시·도지사와 교육감 선거, 2월 18일 시·도의원과 시장·구청장 및 시·구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각각 시작됐다. 지난달 20일부터는 군수와 군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이뤄지고 있다. 한동안 등록한 예비후보가 전혀 없더니 최근 출사표를 던지며 등록한 뒤 공천 경쟁을 위한 사전 선거운동에 들어간 후보가 급증하고 있다. 3·9 대선을 전후한 시기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대선에 온 힘을 쏟기 위해 예비후보 등록을 못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40일밖에 남지 않은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5월 12~13일)을 앞두고 예비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 양당의 공천 심사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지역의 참된 일꾼을 선출하는 데 여야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올해를 지방자치와 분권 실현의 진정한 원년으로 만들고, 실질적인 지역균형발전이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진출해야 마땅하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 작업에 대한 혁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를 막기 위해 아예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천헌금… 더는 안 돼
올 초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지역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해양 분야 전문성과 열정을 살려 부산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40대 남성 A씨. 그는 거주지의 B선거구를 통해 시의원에 출마할 계획인데, 최근 고민에 빠졌다. C당의 시의원 후보 공천을 받으려는 그가 해당 정당 소속의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그럴 때는 자금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금액이면 좋을지 등이 궁금했던 게다. A씨가 주위 지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국회의원과 친해 놓고 후원금 액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천 경쟁에 유리할 것이라는 답변을 주로 들었다고 한다. 정당 공천을 받는 대가로 내는, 이른바 공천헌금의 필요성이다.
A씨에게 이같이 대답한 사람이 많은 것처럼 그동안 지방선거 공천은 공정한 경선은 허울일 뿐이고 헌금 공천과 밀실 공천이 횡행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정도다. 돈을 써서 당선된 경우는 임기 동안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이 앞서 주어진 책무에는 등한한 채 이권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일신의 영달과 치부를 위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거나 비위에 연루된 지역 정치인이 전국에서 숱하게 나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수도권 중심주의와 중앙집권적 사고가 팽배한 이들 사이에서 1995년 처음 실시된 지방선거 또는 31년 역사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무용론이 여전히 제기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지방자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해 온 공천헌금 관행을 완전히 없애야 하는 이유다.
■개선 필요한 공천 시스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중과 인맥의 친소관계는 지방선거 후보 공천 심사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현재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은 후보를 추천하는 등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들에게 출마 희망자들이 잘 보일 목적으로 앞다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실정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공천이 이뤄지는 건 옳지 않다. 지금도 ‘4류 수준’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 정치를 높아진 국민의 의식과 눈높이 수준에 맞도록 쇄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천에 대한 혁신이 요구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기를 바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천 룰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1일 국민의힘 김미애(부산 해운대을) 의원은 SNS에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사적으로 찾아오지 말 것과 국회의원에게 후원금과 선물을 주거나 아부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글을 올렸다. 참으로 바람직한 대응이다. 국회의원을 찾을 시간에 지역 현안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구체적인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며 봉사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라는 게 김 의원의 주문이다. 공천을 노리고 눈도장을 찍으려는 구태의연한 사람이 많은 탓에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황보승희(부산 중·영도) 의원도 지난달 25일 SNS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구·시의원, 구청장 선거와 총선 공천을 받으면서 금품을 주거나 강요받은 적이 없다면서 공천헌금 이야기를 꺼내는 예비후보자를 경선에서 배제하겠다고 경고했다. 두 의원의 말은 인지도와 자금력 등 여러 방면에서 불리한 ‘젊치인(젊은 정치인)’을 비롯한 정치 신인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양당의 혁신 예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6·1 지방선거에 직면해 공정한 공천 시스템 도입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행스럽다.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부산시당이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전원 45세 이하 젊은 층으로 구성키로 해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공천 개혁의 일환으로 나온 결정이어서다. 이렇게 되면 기초단체장 공천 과정에서 지역구 원내외 당협위원장의 입김을 상당히 배제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동안 현역 국회의원이 선호하는 후보를 경선 없이 전략 공천을 하는 바람에 경쟁 후보의 반발과 잡음을 일으킨 사례가 잦았다. 공천관리위의 경우 국회의원들 의견을 그대로 반영해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난을 사기 일쑤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역시 “돈 공천의 고리를 끊고 민주적인 공천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후보자 역량강화시험(PPAT)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시험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재력을 갖춘 중년 이상 남성 말고는 경선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청년과 여성, 각 분야 전문가의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공천 심사에서 예비후보자의 음주 운전과 성폭력 전력, 부동산 보유 현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후보자의 도덕성 기준과 출마 부적격 요건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과 부동산 정책 책임자의 출마에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는 제20대 대통령선거 패배의 주된 원인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분노한 민심에 있다고 분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직은 두 당의 세부적인 공천 심사 방법과 자세한 절차가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으며, 심도 있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부디 투명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부적격자를 제대로 걸러내 지역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헌신할 머슴 같은 인재를 선출하는 방향으로 혁신적인 공천 작업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양당은 혁신이라는 말잔치로 그치지 않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결과물을 잘 만들어 이번 지방선거부터 공천 개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중앙정치 예속 벗어나야
일각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한 지 오래다. 지방선거가 정당과 현직 국회의원에게 휘둘리는 데다 물밑 접촉 등 부작용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정당공천제는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부터 지역 토호 세력의 난립을 막고 각 당이 책임정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현직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이 공천권을 구실로 지방의원들을 사조직처럼 운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 거대 양당 소속 광역·기초의회 의원들과 이번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지난번 대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주야로 동원된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이들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선 정국에 묻힌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알리는 일이 절박했다. 그런데도 개인 선거운동을 하면 지방선거에서 페널티를 주겠다는 중앙당의 으름장에 기가 눌려 예비후보자 등록도 못하고 대선 지원활동에 올인해야만 했다. 당리당략에 치중해 지방선거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앞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당시 여야 간에 이 같은 정당공천제의 문제점과 폐지 주장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 오늘에 이르렀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대로, 지방선거 출마자는 출마자대로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분위기 속에 공천 받기에 혈안이 되면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됐을 뿐이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눈치를 보며 중앙당의 이익에 충성하는 정치꾼을 뽑자는 게 결코 아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역 발전에 필요한 최적의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더욱이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는 지명도와 인맥 위주의 전략 공천과 헌금·밀실 공천이 가능해 깨끗하면서도 능력 있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신인 정치인의 진입을 방해할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예속화하는 현상을 부추기는 만큼 온전한 탈피를 위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최근 들어 전국 각지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지방자치제 활성화와 안착을 통해 지방분권을 강화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 촉진과 지역민 삶의 질 향상에 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별 사정에 맞는 후보를 공천하는 것도 중앙정치권 통제에서 벗어나는 길의 하나일 테다. 유권자들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중심의 장단에 춤추거나 후보의 정당만 보지 않고, 출마자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면밀히 따져 지역의 참일꾼을 대거 탄생시키는 데 고심할 때다. 인물에 대한 변화와 혁신 없이는 지방정치의 발전과 미래는 없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