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이로운 도시 부산
강희경 정치부 차장
최근 지하철을 탈 때면 수시로 흘러나오는 2030부산세계박람회(부산월드엑스포) 유치 홍보 방송 중의 한 문구가 귓가에 계속 맴돌 때가 있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한 제1호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이정재 씨가 “부산은 영화 일로 제가 자주 찾는 도시이고 제가 사랑하는 정말 경이로운 도시이죠. 이 도시의 매력을 2030년 저와 함께 찾아보시지 않겠어요? 부산에서 만나요”라고 말하는데, 부산을 두고 ‘정말 경이로운 도시’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경이롭다’(놀랍고 신기한 데가 있다)는 단어로 부산을 표현하는 데 설레기도 했다. 부산을 극찬하는 데 대해 고맙기도 하고. 어느 지역 사람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부산 사람들도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부산은 한국전쟁 이후 제2의 도시로,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고 국내 최대의 해양도시로 성장했다. 또 인구 300여 만 명의 대도시임에도 바다와 산, 강 등 천혜의 자연환경에 볼거리도 풍부해 국내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산업 몰락에 인구 감소, 쇠락하는 부산
이번 대선 주요 키워드 ‘지역균형발전’
새 정부 ‘서울-부산 두 개 축’ 부산 큰 기회
엑스포·신공항 성공하도록 지역 합심해야
그러나 냉정히 보자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역의 전통 제조업이 점차 몰락하면서 부산의 위상은 예전만 훨씬 못하다. ‘전국 매출 1000대 기업’에서 부산 기업 수는 2008년 55개 에서 2020년 29개로 거의 반토막 났다. 부산의 인구 수는 지난 1995년 388만 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335만 명으로 줄었다. 부산은 또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으면서 전국 7개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부산으로 빠져나가는 청년층이 늘고, 도시 활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떠돌 정도다. 또 부산을 연고로 했던 KT 남자 농구단이 경기도 수원으로 떠난 것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예전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부산의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렇듯 부산에 대한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경이로운 도시 부산’이라는 표현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충분히 더 빛날 수 있는 도시이지만, 되레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현실과의 괴리감도 느껴졌다.
그러나 3·9 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러한 수식어에 걸맞게 부산이 다시 새롭게 도약할 수도 있다는 희망도 본 것 같다.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대선 과정에서 양강 후보는 지역균형발전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지방 소멸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해서다. 국내 인구가 계속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현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도권에 상응하는 지방의 큰 경제권 구축을 위한 부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부산 두 개의 축이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부산 두 개의 축이 작동돼야 대구와 광주와 함께 발전하고 대전도 함께 발전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가덕신공항 조기 완공,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북항재개발 추진,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 등에 대해 여야 후보 모두 동의했다. 이번 대선에서 지방 최대 경합지 중 한 곳으로 꼽혀 후보들이 많은 공을 들였던 만큼, 핵심 현안 사업들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선거만을 위한 ‘공약’이라는 우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윤 당선인의 당선 이후 행보는 이러한 우려를 금세 불식시키고 있다. 공약 실행을 위한 속도전에 나서는 분위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전략을 수립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인수위 내에 특정 목적을 위한 기구가 별도로 구성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엑스포 유치에 큰 힘이 실릴 전망이다. 또 다른 핵심 공약인 가덕신공항 2029년 완공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윤 당선인이 선거 때 깜짝 공약으로 내놨던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서도 “약속했으니 지킬 것”이라며 추진을 못 박았다. 새 정부 출범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갈등이 많지만 부산 공약과 관련해선 역대 가장 의욕적인 출발을 보인다.
윤 당선인이 “국운을 걸겠다”고 강조한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 성공하고 이에 맞춰 가덕신공항이 개항하면 부산의 미래는 새롭게 열릴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부산 미래를 위한 주요 사업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역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정부에서 지방 생존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부산시도 자생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육성 전략 마련이 필요할 테다. 지금이 ‘경이로운 도시 부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him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