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전략 고심하는 양국… ‘분단 시나리오’ 급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2일을 전후해 양국이 각각 출구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터키에서 열릴 5차 평화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 터키에서 양국 5차 평화협상
젤렌스키, 영토 양보 가능성 시사
LPR, 러 연방 가입 주민투표 예정
전문가 “분단, 현실적 출구 전략”
■젤렌스키 “돈바스 문제 타협 원해”
그동안 영토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돈바스 지역에 대해 “러시아와 타협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인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만, 돈바스 문제와 관련한 타협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언론과 90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 채택을 놓고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중립국화는 제3국에 의해 보장돼야 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안보 보장과 중립국화, 비핵보유국 지위를 논할 준비가 돼 있지만 러시아의 휴전 선언과 철군 없이 평화 협정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크림반도나 돈바스 지역 등 영토 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지만 한발 물러서면서 29일부터 터키에서 열리는 러시아와의 5차 평화 협상에 대한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이와 관련,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준은 영토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 보호”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승리란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이것이 없다면 그 무엇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한국처럼 분단 수순”
우크라이나가 한국처럼 분단 국가로 쪼개질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목표를 돈바스 지역 장악으로 전면 축소한 데 이어,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곧 러시아 연방 가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사실상 강제병합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주민투표를 거친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장악해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연결짓고, 해당 지역에 친러 정권을 세울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27일 영국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인용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한반도 시나리오’를 원하고 있다”면서 현재 키이우(키예프)와 하르키우를 포위 중인 러시아군이 2주 안에 동부 지역으로 이동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LPR가 러시아 연방 가입까지 추진하면서 퍼즐 조각이 하나하나 맞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한국처럼 둘로 나누려 한다고 반발했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자, 러시아 지배 지역을 만들어 우크라이나를 둘로 쪼개려 한다”고 비난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분단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번 전쟁의 결말로 봤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 최고사령관은 지난 13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발칸 전쟁 결과를 예로 들며 “애석하게도 가장 가능성 높은 결말은 우크라이나의 분단”이라며 “우크라 남동부를 러시아에 내주고 나머지 지역이 주권 국가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협상 진전, 어디까지 될까
5차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중대한 이슈들에 대한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고 일부 주제는 거의 합의했다”고 전했다. 양국 외무장관을 모두 만난 그는 “양국간 휴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기대했다.
앞서 25일 러시아 측은 출구 전략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날 러시아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세르게이 루드스코이는 25일 전황과 관련 “1단계 작전은 대부분 이행했다”며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할 것”이라고 목표를 축소했다.
그럼에도 아직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영토 문제에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세부 사항의 이견으로 언제든 협상이 파기될 수도 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결사항전을 벌여온 우크라이나 국민을 설득하는 것 또한 과제다.
전쟁 종식을 위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수용하면 무력에 의한 영토 침탈을 국제사회가 인정해준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 잘못된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옥사나 마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존하지 못하면 독재, 과두정치, 전범들이 지구에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