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52>콩깍지엔 콩이 없다
이진원 교열부장
‘난세에 바른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매천 황현의 절명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걸 ‘우리말이 어렵다’는 사람이 하는 말로 바꾸면 ‘말을 바르게 쓰기가 참으로 어렵구나’쯤이 될까. 하지만, 이 어려움에도 해법은 있다. 우리말에 관심을 조금만 더 기울이고, 사전을 한 번만 더 찾아봐도 어려움은 곧장 반으로 줄일 수 있을 터. 게다가 쉬운 말을 쓰고, 글을 쓴 다음에 반드시 퇴고를 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온다.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4000평에 이르는 땅을 임대해 콩을 심었다. 가을에 수확을 앞두고 콩깍지 안에 콩이 하나도 들지 않은 걸 확인하면서 좌절한 경험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잘못 쓴 말이 꽤 많아서 퇴고와 교열이 아쉽다. 우선 ‘땅을 임대해’는 ‘땅을 임차해’라야 했다. 임대는 빌려주는 것이고, 빌리는 것은 임차다. 물론 한자말보다 ‘땅을 빌려’면 더 좋았을 터. ‘만류에도 불구하고’는 ‘만류에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없애도 문맥에 지장이 없으면 없애는 게 좋은 글을 쓰는 지름길이다. ‘농촌으로 내려가’도 껄끄럽다. 은연중에 서울·수도권 중심주의가 드러나는 저런 말 대신 ‘농촌으로 가(서)’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콩깍지 안에 콩이 하나도 들지 않은’이라는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을 보자.
*콩깍지: 콩을 털어 내고 남은 껍질.(방앗간 저편에 매어 놓은 소가 등에 덕석을 두른 채 콩깍지를 씹으며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십삼 년 만에 맡아 보는 굴뚝 냄새에 나는 불현듯 콩깍지와 메밀대를 군불아궁이에 때어 볼 수 있던 날이 그리웠다.)
즉, 콩깍지는 콩을 털어 낸 껍질이다. 그러니 콩깍지 안에 콩이 하나도 들지 않은 건 당연한 일. 단어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글이 우스워진 것이다. 그러면, 콩깍지 대신 무슨 말을 써야 했을까.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콩꼬투리: 콩알이 들어 있는 콩의 꼬투리.(콩꼬투리를 따다./아기가 콩꼬투리만 하다.)
이러니, ‘콩꼬투리 안에 콩이 하나도 들지 않은’이라야 했던 것. 아, 그리고, 저 위에 나온 ‘은연중에’도 사실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표준사전을 보자.
*은연중(隱然中): (흔히 ‘은연중에’ 꼴로 쓰여)남이 모르는 가운데.(은연중 겁을 집어먹다./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속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처럼 ‘은연중’은 남이 모른다는 말인데, 저 자리에는 ‘자신도 모르게’가 어울리는 것. 그러니 ‘무심결에’ 정도가 와야 했다.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