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연히 시작한 소설, 나만의 철학 펼치는 실험장 됐죠”
철학연구자·소설가 홍준성 씨
지난해 출간 장편 ‘카르마 폴리스’
런던 북페어 주목·해외 출판 예정
책 리뷰 파워블로거·‘철학학교’ 운영
“문단의 경향과 제 작품의 지향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저만의 스타일로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최근 부산 금정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홍준성(31) 씨가 등단 이후 오랜 시간 겪은 공백기를 극복하고 지난해 새로운 작품을 낼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홍 씨는 최근 철학과 박사과정에 들어선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소설 ‘열등의 계보’로 2015년 한경청년신춘문예 장편부문에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그가 운영하는 철학 콘텐츠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수 1만 명을 넘기면서 ‘유튜버’로도 소개된다.
2014년 진로에 대해 고민이 시작될 무렵에 처음 쓴 소설이 우연히 교내 문학상에서 입상하면서 홍 씨는 소설 쓰기에 빠져들었다. 홍 씨는 “‘열등의 계보’는 주변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에 ‘한 번 써볼까?’ 생각하고 곧바로 써 내려간 작품”이라며 “정말 이게 나의 재능인지 한번 시험해보고도 싶었다”라고 말했다.
등단으로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홍 씨는 이후 4년 동안 10곳이 넘는 공모전에서 모두 떨어졌고, 30곳이 넘는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도 모두 거절당했다. 지독한 슬럼프였다. 홍 씨는 “등단 이후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착각한 게 문제였다”며 “막막하기도 했지만 기량을 닦는 수련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절치부심 끝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이 지난해 출판된 장편소설 <카르마 폴리스>(은행나무)다. 풍부한 철학과 역사 지식으로 구축한 세계관 속 가상의 도시와 인간들을 풀어낸 이야기로 국내 출판 전부터 세계 4대 도서전 중 하나로 꼽히는 2021 런던 북페어에서 주목을 받았다. 해외 출판도 예정되어 있다. 홍 씨는 “앞으로 15년 정도는 소설 속 세계관을 더 확장해가며 후속 작품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도서관을 통째로’라는 책 리뷰 블로그로 유명세를 탄 ‘파워 블로거’다. 10년 전부터 홍 씨는 책에 대한 단순한 감상 수준을 넘어 자신이 이해하고 해석한 바를 700건 넘는 글로 집요하게 정리해 갔다. 군대에서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에서 의외로 재미를 느꼈다. 홍 씨는 “그냥 혼자 읽기만 하는 것은 너무나 외로운 일”이라며 “읽은 내용을 글로 정리해보면 내가 오해한 것과 이해한 것을 제대로 확인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책 리뷰와 소설 등 ‘활자’를 다루던 그가 2018년부터 유튜브 채널 ‘철학학교’를 운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독자에게 닿지 못하는 습작들이 쌓여가면서 전공인 ‘철학’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사람들에게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어렵고 복잡한 개념과 철학사를 풀이하고 요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유를 다듬을 수 있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했다”며 “삶에서 철학적 물음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 앞에 블로거, 소설가, 유튜버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홍 씨는 ‘철학연구자’의 정체성을 단연 우선으로 꼽는다. 홍 씨는 “철학은 나만의 이야기와 세계관을 주조하는 작업”이라며 “소설과 영상으로 철학을 표현하며 오늘날 세상과의 교감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