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부산] ② 코끼리와의 강렬한 첫 만남, 추억의 동물원
* ‘레코드 부산’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독자들의 사연과 <부산일보> 소장 사진·기사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형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TV속 다큐멘터리에서도 코끼리나 호랑이, 사자를 볼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였죠. 동물원은 살아있는 동물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부산에는 동래동물원과 성지곡동물원, 삼정더파크 3곳의 동물원이 있었는데요. 부산의 마지막 동물원인 삼정더파크마저 문을 닫은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는 앨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덩치가 큰 코끼리에 한 번 놀라고, 호랑이의 매서운 울음 소리에 또 한 번 놀랐던 그 시절의 그 동물원. 시민들의 기억 속 동물원은 어땠을까요? 독자들이 보내준 사연을 함께 공유합니다.
■ 그때 그 시절
#동래동물원
90년대 초반 5~6살때 쯤 유치원에서 동래동물원에 갔어요. 당시에는 동물원 관람 예절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먹던 간식을 코끼리에게 줬던 것 같아요. 저도 어린 마음에 신기해서 간식을 내밀었는데 코끼리가 '프흥' 하고 콧물같은 걸 제 옷에 튀겼어요. 새옷이 더러워져서 어머니께 혼날 줄 알고 꺼이꺼이 울었네요. 그 이후론 중학생 때 혼자 금강공원에 갔는데 동물들이 다들 앙상하더라고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어요. 그 동물들이 지금은 다들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갔겠죠?/ 경남 양산시 37세 권태일
1995년쯤 유치원 소풍으로 금강공원 동물원에 갔어요.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는데 선생님들께서 코끼리나 동물 근처에 가서 먹으면 위험하다고 하셨었죠. 그 말을 듣고도 별 생각없이 우리 앞에서 가방을 열고 도시락을 꺼내는데 코끼리가 가방을 덥석 잡더라고요. 그 순간 밥을 뺏기기 싫어서 잡고 실랑이를 했어요. 선생님은 놀라서 달려오고. 결국 도시락 뺏겼는데 너무 분했어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음료수 하나 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 수영구 34세 곽다솔
#성지곡동물원
부산 어린이대공원에서의 추억이 무지 많은데 저는 특히나 코끼리를 너무 무서워해서 코끼리 보면 엉엉 울었대요. 사진앨범에도 코끼리앞에서 우는 사진이 있어요. 부산에 삼정더파크마저 사라져서 지금 세대 아이들을 데려갈 동물원이 없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부산에도 작게나마 동물원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금정구 전*화 30대 후반
■ 부산 동물원의 역사
부산의 첫 동물원은 1964년 금강공원 안에 문을 연 동래금강동물원입니다. 주로 동래동물원, 금강동물원 이란 이름으로 불렸죠. 이곳은 부산 첫 동물원일뿐 아니라 국내 첫 민간 동물원이기도 했습니다. 연면적 3만 1600㎡부지에 코끼리, 호랑이뿐 아니라 140종 860여 마리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동물원이 흔치 않다보니, 휴일만 되면 동래동물원을 찾는 인파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특히나 봄나들이 철인 4~5월에는 과장을 조금 더 보태 ‘사람이 많아서 땅이 보이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1982년엔 부산어린이대공원 내부에 성지곡 동물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연면적 1만 4035㎡ 규모에 95종 600여 마리를 보유하고 있었죠. 동래동물원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어린이대공원에 있다보니 가족 단위뿐 아니라 어린이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동물원이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동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았는데요. 1970~90년대엔 동물원 동물들의 소식이 신문에 종종 실리곤 했습니다. 바다사자가 동물원의 새식구가 되었다는 소식부터, 동래동물원 어미 사자 ‘애리’가 수컷 새끼 사자 두 마리를 순산했다는 소식, 동래동물원 호랑이 ‘호순이’의 짝을 찾기 위해 전국 동물원에 청혼 사절을 보냈다는 소식, 성지곡 동물원의 수리부엉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 부화했다는 소식 등이 실렸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도 많았습니다. 1980년 7월 1일 동래동물원 사육사가 하마에게 공격을 당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또 동래동물원 관람객이 사자 우리에 뛰어들어 부상을 입는 일도 있었습니다.
성지곡동물원에선 1997년 원숭이가 탈출해 1년 3개월 만에 잡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원숭이는 주택가를 떠돌면서 우유를 훔쳐 먹거나 빨래를 더럽히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하죠. 당시 이 원숭이에겐 ‘신창원 원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2002년 3월엔 성지곡 동물원의 명물인 코끼리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도 있었는데요. 동래동물원이 문을 닫은 후라 부산에 유일하게 남은 이 코끼리를 살리기 위해 사육사뿐 아니라 시민들도 마음을 모아 응원했지만, 결국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부터 두 동물원은 운영난에 시달렸습니다. 1994년 동래동물원이 만성적인 적자로 인해 문을 닫을 처지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 사하구 장림동 효림국민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인 성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부산일보>에 5만 6000원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는데요. 편지에는 “동래동물원은 우리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으며 신기한 동물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산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라면서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신문사 아저씨들께서도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동래동물원은 결국 2001년 11월 5일 임시휴업에 돌입했습니다. 그 다음해 1월 코끼리를 비롯한 180여 마리 동물을 모두 대전동물원에 팔고 문을 닫고 말았죠.
1998년엔 성지곡 동물원도 IMF 이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IMF여파로 일부 동물의 주식 메뉴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부산일보> 1998년 5월 7일자 신문에는 파인애플이나 바나나와 같은 열대과일을 먹던 원숭이들에게 국산 사과를 급여하기 시작했고, 물개들도 고등어 등 값싼 생선으로 주식을 바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성지곡 동물원 역시 운영난을 회복하지 못하고 점점 쇠퇴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 동물에 대한 관람객들의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동물 보호에 대한 욕구들도 높아져갔죠. 더이상 동물원을 민간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생각한 부산시는 2000년 동래·성지곡 동물원 매입을 시도합니다. 2004년 성지곡 동물원 자리에 대규모 시립동물원을 추진하겠다는 ‘더파크 사업’ 계획이 들어서면서, 2005년 성지곡 동물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부산시의 동물원 조성 계획이 차일피일 미뤄지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삼정더파크’가 문을 열었는데요. 운영한 지 6년 만인 2020년 4월에 다시 문을 닫게 됐습니다. 부산시와 삼정기업은 동물원 인수 문제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요. (주)삼정기업은 부산시에 ‘5년 후 동물원을 매수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라’며 소송을 건 상태입니다. 1심 재판에서 부산시가 승소했고, 현재는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정더파크가 문을 닫은지 어언 2년째. 현재 관람객은 받지 않고 있지만, 아직 사육사들이 남아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 그때 그 사람
취재진은 안동수 삼정더파크 운영본부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안 본부장은 과거 동래동물원장을 역임하고 성지곡 동물원 물개 조련사로 일하다, 삼정더파크에서도 본부장을 맡고 있는 부산 동물원 역사의 ‘산증인’이었습니다.
안 본부장은 과거 1980~90년대 동래동물원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는 질문에 “4~5월 주말, 어린이날이면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높은 지대에서 낮은 곳을 쳐다보면 사람이 많아서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땅이란 땅엔 사람들이 다 차 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동래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동물은 단연 ‘코끼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물원 직원들은 코끼리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코끼리는 후각이 매우 좋다고 하는데요. 관람객들이 먹을 것을 갖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코를 내밀면서 달라고 조른다고 합니다. 만약 주지 않는다면,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는데요. 코로 물을 빨아들여서 흙에 비빈 다음 사람들에게 뿌린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세탁비 물어주느라 직원들은 정신이 없었다고 하네요.
또 금강공원은 과거 인기 신혼여행지이기도 했죠. 당시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겉옷을 팔에 걸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코끼리가 옷을 낚아채서 찢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겉보기엔 순해 보이지만, 동물원에선 맹수로 친다고 하는군요.
코끼리뿐 아니라 물개도 인기스타였습니다. 용두산 공원, 태종대와 같이 인기 관광 명소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그림엽서에 동래동물원 물개가 등장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당시 다른 동물원 물개들은 수질 등의 문제로 번식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 동래동물원의 물개들은 10년 가까이 번식을 해 동물원의 효자 노릇을 톡톡이 했다고 하네요.
안 본부장은 동래동물원이 문을 닫자, 성지곡 동물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성지곡 동물원에는 우리나라 세 번째 물개쇼장이 생겼는데요. 이곳에서 조련 공부를 하며 조련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성지곡 동물원 폐장 때까지 ‘동산’, ‘미미’ 등 9마리 물개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죠. “동래동물원은 저를 동물원으로 이끌어줬던 곳이고, 성지곡 동물원은 평생 뼈를 묻은 곳이죠.”
2014년 삼정더파크가 문을 열었지만 운영 6년 만에 문을 닫은 상황. 부산시와 삼정기업의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아,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시민들뿐 아니라, 안 본부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보통은 소송을 벌이고 싸울 때 ‘이게 내 거다’라는 걸로 많이 싸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부산시와 삼정이 서로 ‘내 것이 아니다’로 소송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문을 닫고 있는 중에도 사육사들이 동물들을 잘 돌보고는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고 있으니 직원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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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당백화점’, ‘유나백화점’, ‘태화백화점’, ‘세원백화점’, ‘리베라 백화점’ 등 이제는 사라진 부산의 백화점에 대한 독자 분들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부산일보’ 계정 관련 게시글에 댓글 남겨 주시거나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yool@busan.com 메일함도 열려 있습니다.
글=서유리 기자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