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의령이 부러운 이유
경남 의령군의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노력이 결실을 볼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바 있고,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선 ‘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을 위한 학술발표회’가 열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과 한글학회 관계자가 대거 참석해 지원 의사를 밝혔다.
의령군은 ‘우리말 보존의 모태’라는 자긍심으로 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 배경의 하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알려진 문세영(1895~1952) 선생의 〈조선어사전〉을 확보한 것이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가 소장하다 2021년 11월 의령군에 기증했다. 또 하나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은 이극로, 이우식, 안호상이 의령 출신이라는 것이다.
의령군의 그 자긍심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심정이 든다. 일제 때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 등에 헌신한 인물들의 출신 배경은 전국적이었으며, 의령 외 다른 경남(부산 포함) 출신도 많았다. 이윤재는 김해, 이은상은 마산, 최현배는 울산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현배는 부산과 인연이 깊었다. 1920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해 우리말을 가르치고 연구했고, 1960년대엔 동아대에서 시민강연을 진행했다.
부산과의 인연으로 치자면 윤병효와 김법린도 있다. 1929년부터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활약했던 윤병효는 남해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본적은 부산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부산 백산상회의 지배인으로 일했고, 안희제와 함께 청년 교육기관인 기미육영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경북 영천에서 난 김법린은 어려서 부산 범어사에서 승려가 됐고 1919년 동래장터 만세운동을 이끌었으며, 범어사 강원 등에서 학생을 지도하며 우리말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으로 전해진다.
씁쓸한 건 우리말 보존 운동과 관련해 부산에 이런 인물들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따지자면 이극로 등이 비록 출생지가 의령이지만 주요 활동은 서울 등 타 지역에서 이뤄졌다. 이윤재나 최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울산에는 최현배를 기리는 외솔기념관, 김해에는 이윤재를 추모하는 한글박물관이 들어섰고, 의령에는 국어사전박물관 건립 추진이 한창이다. 하지만 윤병효, 김법린, 최현배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부산에서는 별다른 기미가 없다. 공연한 생트집이 아니라 의령과 울산과 김해가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