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가격 사전에 알았나?”… 응찰업체 간 ‘짬짜미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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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수상한’ 경쟁 입찰

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전자상거래 시스템(K-Pro)에서 찾아낸 신고리원전 5·6호기 경쟁입찰 계약 151건(국제입찰 제외) 중 90% 이상의 낙찰가율(예정가격 대비 계약금액 비율)을 기록한 것은 모두 87건이었다. 이들 계약건만 무려 57.6%의 비율을 차지해 절반을 넘어선다. 보통 입찰담합 징후 분석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낙찰가율이다. 낙찰가율 90% 이상이 수두룩한 데다 100%까지 나왔다는 것을 두고 충분히 담합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낙찰가율 90% 이상 전체 57.6%
예정가격 1000만 원 단위도 이례적
“입찰 거듭 진행, 낙찰가율 높았다”
한수원 해명, 신빙성 낮아 의구심

귀신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력보조기기 경쟁입찰에서 낙찰가율이 99~100%까지 나올 수 있다는 한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우연의 일치’로 낙찰가율이 높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초 예정가격으로 입찰을 시도했으나 참여 업체들이 예정가격을 초과하는 금액으로 수차례 투찰해 유찰되자 예정가격을 상향조정해 다시 입찰에 응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한수원은 낙찰가율 100%를 기록한 A사의 ‘분전반 및 축전지 부하저항기’ 구매계약에서 입찰을 23번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예정가격을 두 번 바꿨다. 또 낙찰가율 99.89%에 구매한 B사의 ‘복수펌프 및 급수승압펌프’ 또한 입찰을 6번 진행하면서 예정가격을 한 차례 바꾸기도 했다.

그럼에도 낙찰가율 100%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예정가격은 복수로 산정하고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가 이를 추첨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입찰이 여러 번 이뤄질 경우 업체들은 10만 원 단위까지 가격을 내려 투찰하는 경우도 있는데, A사처럼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1000만 원 단위에서 예정가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투찰가격을 써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수원이 해당 경쟁입찰에 예정가격을 1000만 원 단위에 끊은 것도 이례적이다. 전직 원전 업계 관계자는 "15년 동안 한수원 입찰에 참가해 봤는데, 1000만 원 단위에서 예정가격이 나온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누구라도 이 같은 예정가격과 낙찰가율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발주처가 예정가격을 올려 새로운 입찰을 시도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원전업계의 중론이다. 업체들이 도무지 예정가격 아래로 투찰가격을 써 낼 가능성이 없어 보일 때 예정가격을 올리는데 이는 발주처가 예정가격 산출을 잘못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B사의 펌프를 구매할 때는 한수원이 예정가격을 6억 7000만 원가량 올리고 B사는 투찰가격을 4억 5500만 원 더 낮췄다.



들러리는 고정, 낙찰자는 낮추기

입찰이 거듭 진행돼 낙찰가율이 높게 나왔다는 한수원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도 있다. 바로 2013년 1월에 있었던 부산 기장군의 고리 2호기 ‘비상 전원 공급용 승압 변압기’ 담합건이다. 당시 입찰에 참가했던 2개 업체 중 한 업체가 낙찰을 받고, 또 다른 업체는 들러리를 섰다. 입찰은 10차례 진행됐는데 들러리를 선 업체는 7번째 입찰 때부터 가격을 예정가격 이상으로 계속 유지했고, 다른 업체는 입찰금액 3억 6300만 원을 써 내 낙찰받았다. 낙찰가율은 98.00%.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2월에 두 업체에 과징금 4000만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이와 유사한 변압기의 평균 낙찰가율은 89.93%였다. 공교롭게도 해당 사건에서 낙찰을 받은 회사가 바로 B사와 같은 계열사였다. A사 또한 한국가스공사가 실시한 배전반 구매 입찰에서 16개 사업자와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2020년 4월에 과징금을 내기도 했다. 취재진은 A사와 B사에 해당 계약건에 대해 질의하려 접촉했지만, 두 회사는 답변을 거부했다.



발전회사 입찰 담합은 국감 단골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수원 등 발전관계사들의 경쟁입찰 담합 의혹이 논란이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장섭(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그해 6월까지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이 발주한 입찰 담합이 모두 46건이었다. 이 중 2018년 한전의 레미콘 7052억 원과 2016년 콘크리트파일 6929억 원, 2020년 한수원 원심력콘크리트파일 구매 입찰 6563억원 등이 포함됐다. 특히 발주사업에서 입찰담합이 가장 많이 적발된 기관은 한수원으로 5년간 10건을 기록했다.

2016년 10월 열린 국감에서는 한전이 전자조달시스템으로 발주한 10억 원 이상 물품구매 입찰의 낙찰가율이 평균 94.74%를 기록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3년 국감 때는 신고리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신한울 1·2호기에 납품된 케이블 관련 담합 의혹이 제기됐다.

전직 조달청 관계자는 “낙찰가율 99~100%대가 나온다면 담합을 의심받아 감사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발주처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발주처는 이를 피하기 위해 심지어 업체에 투찰가격을 더 내릴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100% 낙찰가율이 있다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석하·곽진석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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