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언제까지 ‘차악’을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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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사건은 쉽게 잊힌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나열해 보라고 말한다면, 과연 우리는 몇 개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밥그릇 챙기느라 바쁜 현대 사회에서 각종 사건사고들은 우리의 삶만큼 정신없고 빠르게 흐른다. 그러나 사건은 잊힐지언정, 기억은 남는다. 기억은 분명 사람의 감정 상태와 관련 있다. 뉴스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그 뉴스를 봤을 때 나의 감정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뚜렷하게 떠오른다. 실망 혹은 분노, 이대로는 안 된다는 답답함. 어쩌면 응원과 지지, ‘저 정치인 일 잘한다’ 싶은 만족감. 그런 감정의 기억이 쌓일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철이 다가온다. 우리의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바람을 표현하는 날이 바로 선거 날이다.

20대 대선 결과 정권 교체
응원보다는 실망의 산물 씁쓸

1번 아니면 2번을 찍게 되는
정치 환경은 언제쯤 변할까

소수 정당에게도 길이 열리는
다당제 정치개혁 실현되길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과연 이 정권교체는 1번 후보에 대한 실망의 산물이었을까, 아니면 2번 후보에 대한 응원과 지지의 결과였을까. 각 유권자가 어떠한 연유로 투표했는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돌아섰다. 수치로 유추해 보건대, 이번 정권교체는 ‘실망의 산물’에 더 가깝다.

실망의 기억이 만들어 낸 정권교체는 한계가 뚜렷하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거대한 이슈 뒤에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만 봐도 그렇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을 향한 국민의 반감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좌우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 어떤 공약도 속 시원하게 이행하지 못했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불만족했다. ‘민주당이라면 다른 정치를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1번을 찍었던 중도파들도 실망하긴 마찬가지였다. 애석하게도 5년 만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1번을 심판하겠어’이든, ‘2번이면 다를 거야’이든 간에 실망의 감정이 두드러진 선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1번에 실망해서 2번을 찍고, 2번에 실망해서 1번을 찍어야 할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각각 다른 만큼 희망하는 정치의 모습도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매번 1번 아니면 2번일까. 그건 바로 정치적 지형이 새로운 정치를 희망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두 거대 정당이 독식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유권자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소신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민의가 왜곡될 뿐만 아니라 대안도 사라진다.

특히 이번 선거는 새로운 정치를 꿈꿀 수 없는 형국을 초래했다. 선거 직전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선언으로 다당제의 꿈이 무너지면서 ‘1번 혹은 2번’의 구도가 더욱 힘을 받았다. 1번 이재명 후보 득표율 47.83%, 2번 윤석열 후보 48.56%로 총 96.39%의 표가 두 정당에 돌아갔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수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도 일어났다. 선거비용 국고 보전이 어렵게 된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12억 원이 넘는 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또 청년층의 정당 가입률이 높아지고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를 개혁하는 일은 더불어민주당이 지키지 않고 있는 약속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직전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등이 포함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발표하고 당론으로 채택했다. 작년 말부터 정치개혁 담론에 앞장서고 있는 녹색당은 6월 지방선거 전에 기초의원 지역구 최소 정수를 2인에서 3인으로 하고 지역구 의석수 50% 이상 추천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도 50% 이상을 추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법안을 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맞게 투표하고, 공약을 읽어 보고 투표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투표하는 건 교과서에만 나와 있는 이상적인 일이 아니다. 두 거대 정당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지방선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소수 정당들도,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유권자들의 마음도 조급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치개혁 입법 논의를 위한 회담을 연다고 한다. 부디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기 바란다.

바라건대 다음 선거는 실망의 선택이 아니라 기대의 선택이 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두 정당이 서로에 대한 반감을 동력 삼아 권력을 가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정치에는 발전도 없고 비전도 없다. 부디 6월 지방선거에서는 차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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