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찰가율 99~100%, 수상한 신고리원전 납품계약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울산에 건설 중인 신고리원전 5·6호기의 부품 경쟁입찰에서 낙찰가율 99% 이상이 수두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낙찰가율 99% 이상’은 발주처가 정한 비공개 예정가격에 업체가 99% 이상 같은 금액을 제시해 낙찰받았음을 의미한다. 가 최근 한수원의 전자상거래시스템에 공시된 신고리 5·6호기 국내 경쟁입찰 151건을 분석한 결과, 낙찰가율 99~100%가 무려 21%나 됐다. 예정가격에 근접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은 금액으로 낙찰받은 셈인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업체 간 담합 의혹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지경이다.
본보, 최근 신고리 5·6호기 입찰 분석 결과
업체 담합 의혹, 원전 안전 위해 조사 필요
한수원이 2013년 8월부터 작년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해 전자상거래시스템에 공시한 경쟁입찰 계약은 모두 169건이다. 이중 예정가격을 정하지 않는 국제 경쟁입찰 18건을 제외한 151건의 국내 입찰 중 낙찰가율 99% 이상이 이처럼 많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비상식적이다. 낙찰가율 90% 이상으로 넓히면 151건의 계약 중 무려 57.6%인 87건이 이에 속한다. 발주처인 한수원만 아는 예정가격을 입찰 업체들이 어떻게 이처럼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한수원은 ‘우연의 일치’나 거듭된 유찰로 인한 예정가격 하향 조정 등을 이유로 들었으나, 아무리 해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수원의 해명은 입찰 업체들의 담합에 대해 더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 합리적 의심의 수준이라고 해도 이 문제는 다른 안건과 차원이 다르다. 바로 원전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부울경은 알다시피 국내 최고의 원전 밀집지로, 원전 안전은 부울경 주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그런 원전에 사용되는 부품이 업체 간 담합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면 이는 원전 자체의 안전성에 대한 심대한 구멍이다. 원전의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다. 한수원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예전에도 한수원 발주 사업에서 입찰 담합이 많았던 점을 잊지 않고 있다.
신고리 5·6호기의 높은 낙찰가율은 단순한 가격 담합이 아닌 원전 안전의 차원에서 면밀한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 조달 전문가마저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또 예전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금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발전소 운영은 물론 건설 과정에도 티끌만 한 은폐 의혹이라도 허용되어선 안 되는 곳이 원전이다.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원전 내부의 부패나 불합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아 왔다. 한수원의 이번 의혹도 예외가 아니다. 비밀주의와 보신·안일주의에 대한 경각심에서라도 책임 있는 기관의 진실 규명이 있어야 한다. 그게 원전 안전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