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기대감 어디 가고… 러시아 ‘기만 전술’ 의혹 확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이번 5차 평화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고, 또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하루 만에 이런 낙관론이 후퇴하는 모양새다. 미국 등 서방이 우려했던 러시아의 기만술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고, 쉽사리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 또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어떤 문구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대국민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추가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토 1m를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일부 러시아군의 퇴각은 “우리 방어 병력의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양국 “회담 큰 진전 없었다” 평가
우크라 동부지역 러 포격 여전
돈바스·크림반도 영토 갈등 팽팽
미국 “러 군대 재배치 공세 강화”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자유를 위한 전 세계 투쟁의 중심지로 탱크와 비행기, 포격 시스템을 포함한 무기를 국제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자유도 독재처럼 반드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러시아 역시 5차 회담에서 커다란 진전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전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측과 머리를 맞댄 직후 회담이 건설적이었고 양국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전날 협상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구체적인 제안서를 작성해 서면으로 제출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아주 유망하거나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토는 최대 난제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지위에 관해 향후 15년간 러시아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협상 이튿날 언론 브리핑에서 “크림 지역은 러시아의 일부이고, 러시아 헌법은 러시아 영토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는 걸 금지한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게다가 크림반도보다 훨씬 첨예한 돈바스 지위에 관해선 양측 모두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돈바스 일부 지역을 점령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은 돈바스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도 “군사 작전 목표를 돈바스 해방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내줄 가능성 또한 낮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크림반도와 돈바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한 후에야 영원히 해결될 것”이라며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대화에서도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제안을 내놨다”고 밝혀 양측의 협상이 앞으로도 험난할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 역시 러시아가 군사 활동을 줄이겠다고 한 주장을 의심하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지난 24시간 동안 키이우 주변에 배치한 소규모 군대와 기동부대인 대대전술단을 재배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배치된 러시아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전열을 정비해 다른 곳으로 보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평화 협상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북부 체르니히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는 오히려 전보다 강화하는 모양새라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