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정보전쟁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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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말기 한나라 유방에게 참패한 초나라 항우는 해하에서 포위된다. 군사들은 지쳤고, 군량마저 바닥을 보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초나라의 노래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을 시켜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한나라의 심리전으로 도망자가 속출하자, 항우는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을까”라면서 장렬한 최후를 선택한다. 사면초가의 유래이다.

이런 심리전의 목표는 적의 육체가 아니라 상대방의 정신과 국내외 여론이다. 손자병법에서도 ‘부대는 사기를, 장수는 심리를 빼앗으라’고 가르쳤다. 21세기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하이브리드 심리전인 ‘정보전쟁’은 공격 비용이 낮으면서도 전쟁 상대국과 국내외 여론전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대 전쟁에서 전투기와 미사일, 탱크 등 직접적인 군사력과 함께 심리전, 정보전이 복합적으로 활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한 달째를 훌쩍 넘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전장에서 끈질기게 싸우는 동안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전쟁에서 절대 우세를 점하고 있다.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는 수도에서 전 세계 의회에 연설을 통해 국제적 지지를 얻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 하원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의 1940년 6월 연설을 수정해 “우리는 숲과 들판, 해변, 도시와 마을, 거리와 언덕에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연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관객과의 매우 친밀한 관계’인 코미디 배우 경험이 정보전쟁에서 오히려 큰 자산이 돼 여론의 흐름을 우크라이나 편으로 돌리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러시아군의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와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폭격을 받게 되자 자기 몸으로 갓난아기를 덮쳐 막은 젊은 엄마의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와 전 세계에 울림을 가져왔다. 러시아 침공으로 사망한 어린이를 상징한 빈 유모차 109대를 광장에 세운 시위 사진이 수백만 명에게 전파됐다. 수도 키이우의 한 지하실로 대피한 7살 소녀가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잇고’를 개사해 부른 동영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애잔한 감동을 남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오는 11일 한국 국회에서도 화상 연설을 한다. 이번 화상 연설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한국인이 마음을 열고, 러시아에 전쟁의 중단을 촉구하는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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