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공군 훈련기 KT-1
세상의 모든 시작이 얼추 다 그렇듯 우리 공군의 출발도 미약했다. 국군 창설 이후 약 1년여 만인 1949년 10월 1일, 육군항공사령부가 육군으로부터 분리·독립한 것이 우리나라 공군의 시작이다. 다른 나라와 창설 시기만 놓고 본다면 그리 늦은 편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독립 공군을 둔 나라는 1918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라고 한다. 이어 이탈리아(1921년), 프랑스(1934년), 독일(1935년), 미국(1947년) 등으로 독립 공군의 창설이 확산했다.
그러나 공군 창설이라고 똑같이 불러도 우리 형편은 전혀 달랐다. 서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육군이나 해군에서 이미 보유 중인 항공력의 중앙집중적 운용 차원에서 공군이 출발했지만, 우리나라는 항공력을 거의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라고는 고작 훈련기 10대와 연락기 12대가 전부였다.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훈련기는 이처럼 우리 공군과 출발을 함께한 항공기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훈련기는 대한민국 공군은 물론 항공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군용 항공기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선봉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세계 훈련기 시장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투기 등 다른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주로 미국에 의해 주도됐다. 그러나 이후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 개발에 역점을 두면서 훈련기 분야에서 손을 뗐고, 서유럽 선진국들도 이런 흐름을 뒤따랐다.
우리에게 군용 항공기산업의 틈새시장이 열린 것이다. 그 회심의 역작이 바로 1999년 양산을 시작한 훈련기 KT-1이다. 순수한 독자 기술로 개발에만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아 터키, 페루 등에 수출될 정도로, 미약했던 우리 공군과 항공산업 발전의 자부심이나 다름없다.
그런 KT-1 두 대가 지난 1일 경남 사천 상공에서 공중 충돌해 조종사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KT-1끼리 공중 충돌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현재 당국에서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동급 최고의 비행 성능을 자랑하는 만큼 철저한 보완책 마련으로 KT-1의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하겠다. 이와 함께 조국의 영공 수호를 위해 산화한 조종사들의 명복을 고개 숙여 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