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커피 도시 부산’이라는 스트레스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일본에서 커피 소비가 급증한 시기가 1960년대라고 한다. 고도성장기를 맞은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었다는 진단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자본주의의 중심부로 도약하려는 반(半)주변부 지역의 사람들이 겪는 긴장과 신경증을 반영하는 의미로 읽힌다. 어느덧 한국사회의 커피 소비도 만만치 않다. 중심과 주변 사이에 끼인 나라에서 선진국 대열에 이르는 과정의 현상으로 볼 수 있을까? 최근 부산을 커피 도시로 자리매김하자는 논의가 분분하다. 무엇보다 해양으로 열려 있는 관문 도시가 지닌 특성을 부각하자는 의도가 크다고 믿는다.
어디 커피뿐이겠는가. 고구마와 같은 식물에서 기독교와 같은 서구 종교와 근대 사상, 다방과 같은 도시 공간에 이르기까지 먼저 부산을 거치지 않은 문물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강요된 개항과 식민도시의 슬픈 자화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부산의 커피 열풍을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 사회의 중심과 주변 사이에 끼인 부산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는 증상이 아닐까 궁리해 본다. 서울 중심 혹은 수도권 일극 체제로부터 밀려나고 있다는 고심참담함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뿜어내는 부산의 우울한 감정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말하기보다 분노와 탄식을 토로한 게 더 오래다. 그만큼 지역 소외의 엔트로피가 파국의 임계에 도달하였다는 진단이다.
수도권·비수도권 새롭게 분단
지역 소외 엔트로피 임계점 도달
메가시티·남부권 대안으로 부상
종적 구도 탈피 횡적 구도 그려야
동아시아 지중해 시야에 넣고
부울경 하나의 생활권 만들어야
양극화, 고령화, 분단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산적해 있음은 누구나 안다. 이 가운데 남북한의 분단에 버금가는 새로운 분단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체제가 동아시아 나아가서 세계 질서의 문제라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분단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이다. 후자는 이미 분권이라는 테제로 줄기차게 그 해소방안을 논의해 오고 있다. 하지만 동어반복을 거듭하다 보니 이제 말의 신빙성이 크게 줄어든 형국이다. 연방제에 상응할 개헌을 한다면 일거에 분권이 이루어지겠지만 이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먼저 지금의 행정 단위와는 다른 공역권이 전제된 바탕 위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될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일극 체제의 극복과 분권이 시대의 정신임을 웅변하면서 부울경 메가시티에서 남부권에 이르는 구상이 그동안 부산발로 제출되었다. 둘 다 놓치지 않아야 할 대안이라 생각한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경부 개발의 확대재생산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전제이다. 중심에 대응하는 이항 대립에 그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지붕을 하나 얹는다고 하여 발본의 개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점에서 남부권을 중첩할 필요가 있다. 연안과 해역에 대한 인식이 포개져야 한다. 서울과 부산의 종적 구도에서 부산, 창원, 통영, 광양, 여수, 목포의 횡적 구도를 그려 내고, 남해의 해항들(seaports)을 연계하는 방안이 종요롭다. 나아가 동아시아 지중해를 시야에 넣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도시 대개조, 월드 엑스포와 같은 메가 이벤트 유치 등 정책사업에서 부산은 항상 육역과 해역, 구심력과 원심력을 역동적인 원리로 삼아야 한다.
분권형 개헌을 요구하고,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 분권을 실현하라는 지역민의 결의가 가열하다. 이러한 가운데 부산을 출발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횡단하는 ‘트랜스 유라시아 원정대’가 오는 6월에 출발한다고 한다. 20개국 50여 도시를 거친다고 하니 가슴 벅차고 경이로운 일로 다가온다. 그 시작이 부산이고 그 종착이 포르투갈 카보다로카라고 한다.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호카곶을 마지막 지점으로 정한 상징적 의도를 짐작하겠다. 그런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해양의 의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만일 귀환 행로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배로 아프리카 연안을 지나 인도, 동남아, 동중국, 일본을 거쳐서 부산으로 한다면 더없이 멋진 일이 되리라 믿는다. 그럴 때 부산은 유라시아의 시작과 끝일뿐만 아니라 해역을 통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잇는 네트워크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메가시티를 형성하여 광역권 자립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은 수없이 많다. 특화된 산업의 육성을 통한 경제권이 우선이고 이를 뒷받침할 교통 등의 인프라가 뒤를 이어야 한다. 지역의 국립대학 무상교육을 실현하고 사립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부울경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지 못한다면, 부울경 메가시티는 부실한 세 개의 건물 위에 어울리지 못하는 거대한 지붕을 얹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지붕을 얹는 일만큼 해항과 공항을 확대하고 강을 낀 유역을 정비하며, 도시 간의 네트워크를 긴밀하게 하고, 대학과 산업을 첨단화하며 해양과 섬과 육지를 두루 소통하는 교통 미디어를 형성하고, 생활권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요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