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사람 모조리 쐈다” 우크라 소도시 부차 ‘집단 학살’
러시아군이 물러간 우크라이나 북부 소도시 부차에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벌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가 충격과 공분을 표출하고 있다.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쐈다”는 생존자 증언이 나오고 있고, 우크라이나 당국은 키이우 인근에서만 민간인 시신 400여 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추가 제재 논의에 착수한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출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러시아군 철수한 북부 도시 곳곳
민간인 대상 ‘제노사이드’ 정황
우크라 군, 시신 410구 수습 발표
미국·EU 공분 속 러시아는 부인
3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키이우 북서쪽 37㎞ 떨어진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한 집단 학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이 휩쓸고 지나간 부차의 거리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으며 일부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총살’ 방식으로 살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공위성 사진에는 부차의 대형 교회 앞마당에 집단 매장지가 포착됐고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는 주장과 목격담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CNN은 “포장도로에 엎드려 있거나 엎드린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시신)이 있었다”면서 “손이 흰 천 조각으로 등 뒤로 묶여 있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불탄 자동차 근처 도로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부차를 포함,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도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쐈다”며 “사람이 집에 있는데도 가스관을 향해 총을 쐈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전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자세 그대로 숨진 시신 사진 등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제노사이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이 ‘대량 학살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약’을 만들면서 개념이 정립됐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로 큰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협약을 맺었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국민과 민족, 인종, 종교, 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전멸시킬 의도로 행해지는 비인도적 폭력 범죄를 뜻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군이 국가 전체를 제거하려 한다”면서 “이는 제노사이드”라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EU 등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부차 상황을 맹비난하며 “가능한 모든 증거를 조사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확인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방위를 더욱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가장 강력한 경제적 압박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 유고 내전 전범들을 기소했던 카를라 델 폰테 전 유엔 국제전범재판소 수석검사는 인터뷰에서 “푸틴은 전범이며 그에 대한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EU와 미국은 오는 5~7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러시아와 무역을 이어가는 국가에 대한 2차 제재 등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전쟁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으며 목격자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온라인 포털을 개설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 혐의를 부인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에서 “공개된 영상은 서방 언론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보리 소집 요청에 대해서는 “평화 협상을 방해하고 부차에서의 도발을 빌미로 폭력 사태를 확대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시도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