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18. 비석이 있던 곳이 전생의 생가라고? 동래부사 비석의 비밀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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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1599년 조선 후기, 당시 부산 지역을 부르는 말은 '동래부'였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고 있겠지만 당시 부산의 중심은 동래였다. 그리고 동래부사라고 하면 현재의 부산시장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한 동래부사의 덕을 기리는 '선정비'가 부산 외곽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점은 같은 인물의 또 다른 선정비는 부산박물관에서 전시·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하나는 박물관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논밭 한가운데 방치되어 있을까? 맹탐정이 직접 선정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검증>

7개 선정비의 주인공, 유심

동래부사라고는 송상현밖에 모르는 맹탐정이다. 그것도 송상현 광장이 생긴 이후 관심 가졌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유심 동래부사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유 부사는 1649년(효종 즉위년) 11월부터 1651년 7월까지 1년 8개월 동안 동래부사를 지낸 인물이다.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동래부 7개 면(읍내면, 동면, 남촌면, 동평면, 사천면, 서면, 북면) 에 모두 부사 선정비가 세워진 것은 유심이 최초다. 선정비는 말 그대로 선정을 베푼 관원의 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그만큼 덕이 많은 인물이었을까? 이유는 이후 유 부사가 동래부사에서 바로 경사감사, 즉 지금의 경상남도지사로 임명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정3품 도승지(비서실장 격)까지 승승장구한다. 영전한 유 부사의 선정비를 세움으로써 계속 동래부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부하 직원들의 사회생활(?) 일환일 수도 있다. 7개의 선정비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선정비는 2개뿐이다. 나머지 5개의 선정비는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2.3m 높이의 거대한 선정비

먼저 부산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서 관리되고 있는 선정비는 원래 동래구 KT플라자 건물 뒤에 있었다. 이곳은 과거 동래읍성의 서문 근처다. 어떻게 박물관으로 오게 됐을까? 이준혁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2001년 도로 확장 공사 등 개발로 인해 동래 지역에 있던 것을 이전해 전시하고 있다"며 "부산박물관에 야외 전시되고 있는 비석들 중에서도 꽤 큰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선정비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높이 2.3m, 폭 81cm로 거대하다는 말이 적절하다. 부산박물관에 보존된 선정비는 상태가 좋고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됐다.

비석은 귀부, 비신, 이수로 만들어져 있다. 귀부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말하고, 비신은 비문이 새겨진 비석 몸통을 말한다. 이수는 용이 조각된 비석의 머리를 장식하는 돌이다. 유 부사 선정비도 이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투박하지만 해학적인

유심 선정비는 조선시대 서민적이고 해학적인 면이 잘 드러나 있다. 표면이 고른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모양이다. 거북 모양의 귀부는 원래 자리에 있던 작은 바위의 윗면만 가공해 다듬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거북의 등이 다소 높고, 불규칙적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부사 유공심 청덕선정 만고불망비(府使柳公淰淸德善政萬古不忘碑)’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비석 뒤에는 비석을 세운 연대와 비석 건립의 중심인물, 석공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유심 선정비의 화려함은 이수에서 돋보인다. 등이 높은 귀부와 밸런스를 맞춘 듯 삼각형 모양으로 처리되어 있다. 삼각형 가운데 꼭짓점 여의주를 중심으로 두 마리의 용이 배치되어있다. 동래부사라는 신분 때문인지 발톱이 3개인 삼조룡으로 표현되었다. 보통 왕을 나타내는 용의 발톱 수가 5개인 걸 생각하면 꽤 높은 대우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방치된 반여동 선정비

부산박물관을 뒤로하고 최근 발견된 선정비를 찾기 위해 해운대구 반여동으로 향했다. 반여동 반석초등학교 근처. 논밭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선정비를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그러나 반여동에서 발견한 선정비는 박물관에 전시된 선정비와 달랐다. 위용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초라했다. 선정비 주위에 울타리는 둘러쳤으나 이게 묘비인지, 문화재인지 알려주는 게시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면에 새겨진 비문도 풍화로 흐릿해 알아보기 어려웠다. 부산박물관의 선정비보다 크기도 작았다. 높이 1.5m, 폭 61cm 정도다. 거북 모양의 귀부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 찾아볼 수 없고 단단한 바위 위에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삼각형 모양의 이수도 오랜 기간 관리되지 않아 시커메 용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비석 뒤에도 글자를 찾을 수 없었다. 선정비가 숨어 있어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방치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비석이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무덤의 주인은 누구?

반여동 선정비 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무덤이 있다. 무덤 옆에 '분묘 개장 공고'가 세워져 있다. 공고에 따르면 이 묘지는 2017년 4월 개장 신고 후, 같은 달 부산시립화장장에서 화장 절차가 완료된 분묘였지만, 2020년경 다시 봉분이 구축된 가묘, 즉 가짜 묘라는 것이다. 확인 결과 최근 5년 이내 분묘 허가 사실이 없는 가짜 묘이기 때문에 개장 절차를 밟는 과정이라고 한다.

유심 부사 선정비 뒤에 가짜 묘가 있는 게 단순한 우연일까? 이상길 동래 향토자료 수집가이자 향토사학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그는 "선정비가 세워진 이곳은 과거 조선 시대 '굴방소'라고 불리던 연못이 있었는데 주변 풍광이 빼어나 유명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유 부사가 이곳에 자주 낚시를 하러 들렀고 그때마다 항상 애첩과 동행했다"며 "폭우가 내리던 날, 물이 넘쳐 애첩이 빠져 죽자 넋을 기리기 위해 신발, 옷가지 등을 묻어 봉분을 만들어 넋을 달랬다"고 했다. 또 "2020년 10월 3일 묘지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훼손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는데 아직 그 이유가 미스터리"라고 덧붙였다.


선정비의 위치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선정비 뒤 가묘가 바로 애첩의 묘라는 주장이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마치 선정비가 가묘를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이상길 향토사학자는 "이런 이야기가 담긴 묘지를 개장한다고 하니 아쉽다"면서 "더군다나 3월 23일까지만 해도 분묘 개장 공고가 선정비에도 붙어 있어 기가 찼다"라고 했다. 그의 말인즉, 유심 선정비를 묘비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선정비가 세워진 땅도 특별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근처 반석초등학교의 '반석'이라는 지명이 바로 선정비가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선정비는 아무 곳에나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유심 부사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있는 곳에 세워졌다"며 "부산박물관으로 이전한 선정비에도 유심 부사 전설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전생 설화의 주인공

조선 시대 동래읍성 서문 외곽,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들의 꿈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분의 벽은 높았고 크게 좌절한 아들은 시름시름 앓다 며칠 뒤 죽게 됩니다. 슬픔에 싸여 밤을 보내던 어머니는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들은 재상 집에서 다시 태어나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세월이 흘러 유심은 동래부사로 부임하게 되고, 난생처음 와 본 동래가 꿈속에 자주 보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낯익은 집으로 들어가니 한 노파가 어린아이 제사상 앞에서 울고 있었고, 마침내 유심은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노파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상길 향토사학자에 따르면 전생의 어머니가 살았던 곳에 '선정비'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동래구 KT 동래지점 건물 뒤에 있었다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관된 바로 그 비석이다. 전설에 따르면 선정비가 있던 그 자리가 유 부사의 생가라고 말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건결말>

운명이 엇갈린 두 개의 유심 부사 선정비. 부산박물관에 보관된 선정비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반여동 선정비는 2000년대 초반 발견된 이래로 문화재 지정은커녕 밭 사이에 20년 가까이 방치돼 있다. 게다가 선정비가 있는 곳은 센텀2지구 개발 예정 지역이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해운대구청에 이 비를 이전하라고 통보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향후 센텀2지구 조성 이후 개발부지 내 근린공원으로 옮겨 문화재 지정 등의 보존 방법을 찾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 특히 안내 게시판에도, 인터넷에도 나와 있지 않는 살아있는 기록들이 사라지고 있다. 선정비를 세운 곳은 저마다 이유가 있는, 다시 말해 이야기가 있는 자리다. 관리하기 쉽다고 이동하거나 훼손하면 이야기도 사라진다.

대연동에서 반여동으로 그리고 명륜동으로. 유심 동래부사 선정비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 부산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후대에 전승되도록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선정비에 관한 역사적 의미와 미래 가치에 대해 지역사회에서부터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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