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봄꽃의 경고
김동주 라이프부 차장
4월이 되자마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만나는 꽃 중에 예쁘지 않은 꽃이 있겠냐만서도 “와~”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건 단연 벚꽃이다. 머리 위에서 쏟아질 듯한 풍성한 꽃잎과, 곧이어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는 꽃비. 서둘러 떠날 것을 알기에 더 눈에 담아두고 싶다. 그래서 봄이 오면 너도나도 벚꽃에 홀린다.
벚꽃으로 유명한 지역에 살고 있다. 지난 주말은 그야말로 ‘벚꽃장’이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차들이 밀려들었고 도로는 꽉 막혔다. 벚꽃나무 아래 ‘꽃걸음’ 걷는 이들도 가득했다. 차가 밀려도 사람에 밀려도 웃음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올해 벚꽃 배경이 예년과 조금 다르다. 분홍 벚꽃만으로 충분히 화려한데 노란 개나리가 같이 피어 있다. 색색 봄꽃의 컬래버레이션에 당장에 눈은 호사를 누렸지만 ‘이게 머선 일이고’ 싶다.
봄꽃은 피는 순서가 있다. 동백이 가장 먼저고 다음이 매화와 산수유다. 그리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비슷한 시기에 봄꽃들이 함께 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봄꽃의 개화 시기는 ‘기온’에 영향을 받는다. 식물 생장을 예측하는 데 필요한 온도인 ‘적산온도’는 생육일수와 일평균 기온을 곱한 값이다. 꽃들은 각각 일정 적산온도에 도달해야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런데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개화 시기와 순서가 흐트러진 것이다.
“60년 후에는 2월에 봄꽃이 핀다?” 지난달 기상청은 우리나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개나리·진달래·벚꽃 등 봄꽃 3종의 개화일 전망 분석 결과를 내놨다. 2070년 탄소중립에 이르는 ‘저탄소 시나리오’와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하는 조건의 ‘고탄소 시나리오’로 나눠 예측했다.
현재 봄꽃 평균 개화일은 개나리 3월 25일, 진달래 3월 27일, 벚꽃 4월 4일이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21세기 후반기엔 개나리 3월 2일, 진달래 2월 28일, 벚꽃 3월 10일로 앞당겨진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동시에 피거나 진달래가 더 빨리 필 수도 있다. 부산의 개화일은 개나리 3월 16일→3월 4일, 진달래 3월 20일→3월 5일, 벚꽃 3월 28일→3월 4일로 당겨진다. 대구의 벚꽃 개화일은 2월 27일로 부산보다 빨라지며, 서울에서도 3월 12일 벚꽃이 핀다.
과거 30년(1912~1940년)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 봄 시작일이 17일이나 빨라졌다고 한다. 겨울 길이는 109일에서 87일로 줄었고 봄은 85일에서 91일로 늘었다. 지구 온난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렇게 봄꽃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면 생태계 전반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냉해 피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곤충들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꽃이 피면 수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 작물 재배에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2070년 탄소중립에 성공하는 ‘저탄소 시나리오’ 때는 어떨까. 개화 시기는 10~12일 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됐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변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지 아예 멈추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탄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탄소중립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