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지역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수석논설위원
한국 드라마 일색인 일본의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서 ‘신문기자’는 올해 가장 뜨거운 화제작이다. 같은 감독이 3년 전에 만든 동명의 영화 역시 흥행에 성공하고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이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요즘 한국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온 경우가 거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한국 영화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폭로도 동영상을 인터넷에 뿌리는 식으로 연출된다. 기자가 등장한다면 권력과 결탁해 부패한 ‘기레기’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영화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서울, 지방을 식민지로 여겨
산업은행 이전도 반대 목소리
지역 여론이 이끈 가덕신공항
국가균형발전 위한 초석 놓아
7일 제66회 ‘신문의 날’ 맞아
지역신문 역할 되새기는 계기로
내일이 제66회 ‘신문의 날’이다. 1896년 4월 7일에 발간된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일을 기념해 1957년에 제정했다. 전국의 모든 신문이 이날 휴간을 하고 오붓하게 벚꽃놀이를 즐기던 호시절도 있었다. 신문이 사양 산업이 되었다는 냉혹한 현실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느낀다. 종이라고는 죄다 택배 포장 박스뿐. 신문은 폐지조차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오랜 전통의 신문사들이 속셈이 뻔한 건설업체 등에 넘어가는 모습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아직도 신문사를 사겠다는 자본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언론계는 기자들의 이직과 전직이 이어지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 기자 후배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신문방송학과에 가고 싶다고 해서 알아듣게 잘 타일렀다고 ‘웃픈’ 이야기를 전했다.
종이 신문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다. 어쩌면 슬퍼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종이 신문이 사라진다고 세상에서 뉴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언론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사실 그렇게 여럿일 필요가 없다. 특히나 아까운 나무를 베서 만드는 신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용산으로 이전 추진 중인 대통령 집무실 문제도 그랬다. 찬반 논란이 극심했지만 이참에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으로 옮겨 실질적인 행정수도를 완성시키자는 상식적인 주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정부 세종신청사는 오는 8월이면 완공된다. 국회 세종의사당도 2027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의회·행정 기능 분산으로 인한 행정·사회적 비효율이 2016년 기준으로 연간 2조 8000억~4조 8800억 원에 이른다. 윤 당선인도 대선 직전 “세종시를 실질 수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을 비롯해 한국일보·서울신문 등 주요 신문의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된다. 이들의 본사와 근거지는 한결같이 수도 서울이다. 세종과 충청 지역 일부 신문에서 세종 이전을 주장해도 영향력이 너무 미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 반발하는 시도가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한 칼럼에서 “기업·금융사·금융당국·국회가 다 서울에 있다. 나눠 먹기식 지방 이전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라고 반대 목소리를 대변했다. 모든 게 서울에 있어서, 지역균형발전을 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어서 이러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이제야 본격 추진되는 가덕신공항에 대해서도 서울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가. 고추나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된다면서 비아냥댔다. 조선일보는 힘들게 뚫은 부산~헬싱키 노선 개설에 대해서도 “핀란드 항공사에 유럽 승객 다 뺏긴다”고 기업의 편을 들었다. 서울 본사 언론사는 그동안 지방을 사실상 서울의 식민지로 대했다.
는 부산시민들과 함께 가덕신공항을 지켜 냈다고 자부한다. 날이면 날마다 공항 관련 기사·사설·칼럼을 쏟아냈다.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가 아니면 목청 높여 이야기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강고한 기득권 서울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덕신공항을 성취한 결과가 2030 부산월드엑스포·LCC부산 본사 추진, 나아가 지역균형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는 때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지역 신문사의 역할을 새롭게 익혀 가고 있다. 역시 위기 속에 있고 독자들 눈에 차지 않는 부분 또한 많을 것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지역언론이 살아야 지방이 살고,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끝으로 점차 잊혀 가는 신문의 날을 맞아 영화 ‘신문기자’의 실제 주인공인 도쿄신문의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가 항상 마음속에 소중히 새기고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전한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은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으로 인해 자신이 바뀌지 않기 위해서이다.” 신문기자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자문한다.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