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행복한 순간 선사하는 ‘좋은 배우’ 꿈꿉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배우 김태리
퀴즈 하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한 배우. 영화 ‘1987’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혀가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배우 김태리(32). 맡는 역할마다 맞춤옷을 입은 듯 찰떡같이 소화한 그는 6년 만에 충무로 대표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겉으로 보기엔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 같지만, 지난 시간엔 잠시도 쉬지 않고 치열하게 달려온 그의 열정이 묻어있다.
영화 ‘아가씨’로 데뷔 연기 호평
충무로 샛별서 대표 배우로 성장
“고등학생 나희도 역 쉽지 않았다
마지막 회 시청률 감사한 마음”
최근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마치고 만난 김태리는 이번 작품을 유독 “버티기 힘들었다”고 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캐릭터를 빚는 데 온 힘을 쏟아내서다.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며 성장하는 주인공 ‘나희도’를 그려야 했고, 펜싱 금메달리스트 연기를 위해 6개월 동안 펜싱 연습을 죽도록 했다고. 김태리는 “근육통에 시달리고 도수 치료를 받았다”며 “펜싱 노트를 쓰면서 ‘진짜’처럼 보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마음과 정신을 추스를만큼 어려웠고 힘들었던 작품”이라고 했다.
이번 드라마는 첫 회 시청률 6.4%에서 시작해 마지막 회 11.5%로 껑충 뛰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김태리는 “결과로 보상받은 것 같아 너무 좋다”며 “고민과 스트레스, 거기에서 헤어나오려고 했던 노력이 힘들었지만 그걸 겪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덕분에 그 시절 소품을 보는 재미도 좋았단다. “PC통신이나 땋아서 만든 열쇠고리 같은 걸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소품은 완벽해서 서른 넘은 나이에 고등학생을 연기한 제 피부나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태리가 연기한 ‘나희도’는 명랑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하다. 감정에 솔직하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어도 툴툴 털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졌다. 김태리는 “희도는 자존감이 높고 너무나 건강한 아이다. 갈수록 에너지가 고갈돼 억지로 에너지를 짜내야 했다”며 웃었다. 그는 “에너지 분배를 잘해야 한다는 걸 이번 작품을 하면서 크게 배웠다”며 “희도의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을 부러워하면서 연기했다”고 했다.
희도를 연기한 김태리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김태리는 “희도의 칠전팔기가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가 과거에 썼던 말들을 대본 군데군데서 발견했어요. 솔직하고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닮은 것 같아요. 다만 희도는 자격지심이 없고 매우 건강한 친구라는 건 저보다 훨씬 낫죠.”
나희도에게 ‘펜싱’이 전부라면, 김태리에겐 ‘연기’가 그렇다. 희도가 펜싱을 하면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처럼 김태리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고 했다. 첫 영화인 ‘아가씨’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출연한 영화 ‘1987’과 ‘리틀 포레스트’ ‘승리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연이어 흥행했지만, 여전히 연기는 어렵게 다가온단다.
김태리는 “연기는 힘들지만 눈물나게 행복한 순간이 가끔 온다”며 “그 짧은 순간은 연기를 해나가는 큰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제 연기로 어떤 분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힘든 순간들을 보상받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로 족해요. 많은 사람에게 그런 순간을 주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