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포화·원전 재가동…‘원전 없는 도시’ 물거품 되나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추진 파장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내년 4월 설계수명(40년)이 만료되는 고리원전 2호기에 대한 수명 연장(재가동)을 위해 ‘계속운전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제출하면서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운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 뒤집기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원전 강국 건설’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예고된 수순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한수원의 이번 보고서 제출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부산·울산 등 원전밀집지역에도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문 정부 탈원전 정책 폐기 신호탄
수명 연장 노후원전 더 늘어날 듯
원전 밀집한 부산·울산에 후폭풍
핵폐기물 대책 없어 부하 더 커져
4일 한수원이 고리 2호기 설계수명 연장을 위한 계속운전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원안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자 지역 탈핵단체들은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고리 2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형성된 ‘원전 없는 도시’ ‘클린에너지, 부산’에 대한 염원을 짓밟는 행위라는 것이다.
정수희 탈핵부산시민연대 활동가는 “한수원이 고리 2호기 계속운전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원안위에 기습적으로 제출한 게 무척 경악스럽다”면서 “오래 가동된 원전인 만큼 고준위핵폐기물도 엄청나게 쌓여 있어도 갈 곳이 없는데, 원전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 기조에 따라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은 모두 폐쇄하는 것으로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친원전 정책’으로 전환함에 따라 고리 2호기는 ‘폐쇄’가 아닌 ‘수명 연장(재가동)’이 확실시되고 있다.
원안위는 한수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검토해 고리 2호기의 ‘계속 운전’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원안위에서 설계수명 연장 결정이 나면 해당 원전은 10년 단위(주기)로 설계수명이 연장된다. 당초 설계된 수명보다 최소 10년간 더 재가동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원전 중에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등 원전 2기만 설계수명 만료로 폐쇄 결정이 내려진 상태다.
고리 2호기와 고리 2·3호기, 한빛 1호기 등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설계수명이 도래하는데,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이들 원전은 모두 설계수명 연장(재가동)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문제는 부산·울산지역에 들어설 원전해체센터 건설 사업이 예정보다 지체되고 있는 점이다. 여기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처분)시설은 아직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장기간 답보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수명을 다한 노후원전까지 설비 개선 등을 통해 속속 재가동에 들어갈 경우 원전밀집지역인 부산·울산과 경북 지역에는 그만큼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고 시민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에는 아직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이 없어 고리·신고리원전 등 원전 내 수조에 임시보관 중이다. 국내 상당수의 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가 속속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고리 원전 역시 2024년 포화 예정이다.
최근에는 원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기존 원전 부지에 임시저장하는 내용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고리·신고리원전이 들어선 부산·울산지역이 사실상 ‘핵폐기장’으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편, 고리2호기는 일단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2023년 4월 8일이면 일단 가동이 중단된다. 대신 고리 2호기는 한수원이 제출한 ‘계속운전안전성평가 보고서’에 대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기간(18개월), 원안위의 운영변경허가 심의기간(24개월 이내), 한수원의 자체 설비개선 등 기간을 감안하면, 계속 운전 결정이 날 경우 2026년께부터 재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송현수·황석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