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 가득 봄 향기 취나물에 취하다
부산 온천동 ‘통나무하우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 소녀가 있었다. 종갓집 며느리인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를 처음에는 숨겼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서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음식 맛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식당을 차렸다. 그 맛에 반해 20년 동안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부산 동래구 온천장 농심호텔 앞에 자리를 잡은 ‘통나무하우스’의 김은훈 사장이 바로 음식을 사랑했던 소녀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녀는 20년 전 온천장 해동모텔 인근에서 맥주 가게를 열었다. 김 사장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힘든 식당 일을 하는 걸 아버지가 싫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식당을 개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요 메뉴는 점심 특선·저녁 코스 요리
사장은 맥줏집하다 7년 전 한식집 개업
정성 가득 담긴 푸짐한 점심 특선 ‘눈길’
취나물 등 각종 반찬 젓가락 끌어당겨
간장 양념 돼지불고기·가자미구이 일품
김 사장은 맥주를 팔면서 마른안주 대신 수육이나 불고기 전골 등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안주로 내놓았다. 빼어난 손맛에 반한 손님이 몰려들었다. 두 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7년 전에는 현재 위치에서 아예 한식집을 개업했다. 이름은 바꾸지 않고 통나무하우스를 계속 유지했다. 놀랍게도 맥주 가게일 때 찾아오던 손님이 단골로 계속 이어졌다.
통나무하우스의 주요 메뉴는 점심 특선과 저녁 코스 요리다. 김 사장이 점심 특선 음식을 하나둘씩 가져왔다. 파전, 취나물 무침, 말린 도루묵 무침, 전복 내장 미역국, 돼지불고기, 배추 겉절이, 두부 졸임, 나물, 가자미 구이, 잡채, 꼬막 무침 등으로 구성된 메뉴다. 저녁 코스 요리에 비해서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음식은 상을 가득 메웠다. 첫눈에도 신선하고 깔끔하게 보이는 게 맛있는 기운이 왕성하다. 젓가락을 놀릴 때마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든 게 느껴진다. 집에서 차린 식사처럼 정갈하고 사랑스러운 맛이다.
취나물은 된장과 참기름으로 무친 반찬이다. 신선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한 게 한참 무르익은 봄을 입안에 넣는 맛이다. 배추 겉절이는 매일 아침에 만든다. 그래서 신선한 맛이 좋다. 두부 졸임은 꽈리고추를 넣고 소고기를 갈아 섞은 반찬이다. 고추의 은근하게 매운 느낌과 소고기의 고소한 맛, 두부의 담백한 맛이 조화를 잘 이뤄 젓가락을 자꾸 끌어당긴다. 나물은 겨울초와 콩나물, 말린 곤드레로 구성돼 있다.
말린 도루묵 무침은 포항에서 미리 반건조한 도루묵으로 만든다. 튀긴 도루묵에 고추장, 고춧가루, 땡초, 참기름을 넣고 무친 반찬이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입맛을 끌어당긴다. 미역국에는 전복 내장을 넣는다. 원래 내장을 넣으면 비린내가 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김 사장이 특유의 비법으로 비린내를 잡아 잡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향긋한 바다 냄새와 고소한 맛이 잘 조화를 이룬다.
돼지불고기는 간장 양념만을 사용한다. 고기를 이틀 정도 간장에 절인 뒤 배, 사과, 키위 등 과일을 갈아 넣는다. 이때 배합 비율을 잘 맞춰야 한다.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일품이다. 제철을 맞은 가자미 구이는 고소하다. 원래는 조기를 사용했지만 최근 가격이 너무 올라 할 수 없이 가자미로 바꾸었다. 파전은 얇게 부친다. 얄팍한 파전을 접시에 담으면 여러 겹으로 달라붙어 층을 이룬다.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빼어나 전채로 먹기에 적당하다. 한 장씩 떼어먹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러 장이 겹쳐진 채로 먹으면 씹는 맛이 좋다.
통나무하우스의 고객 중 절반가량은 오래된 단골이다. 흔한 말로 ‘한 번도 안 온 손님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손님은 없는’ 셈이다. 김 사장에게 가장 감사한 기억을 남겨준 단골은 코로나19 탓에 힘들었던 2020년에 찾아온 손님이다. 그는 “식사를 하고 돌아가면서 ‘힘든 데 보태 써라’며 현금 1000만 원을 주고 갔다. 아주 오래된 단골은 아니지만 맛을 잘 아는 분이다. 정말 고마웠다. 돈은 쓰지 않고 지금도 갖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통나무하우스/부산 동래구 금강공원로20번길 22/051-554-5757. 점심특선 1인분 1만 5000원, A코스 5만 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