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화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의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화상으로 연결해 연설하기 전, 부차에서 자행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엔을 향해 행동하지 않으려면 문을 닫으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화상연설에서 유엔을 향해 “행동하지 않으려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또 러시아를 안보리에서 퇴출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통신,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 화상으로 등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부차,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희생 당한 민간인들의 참혹한 모습을 여과 없이 90초간 보여줬다. 회의장은 숙연해졌고, 영상을 본 각국 외교관들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떨궜다.

화상연설서 민간인 시신 공개
“행동 않으면 문 닫아야” 비판
러시아 안보리 퇴출도 촉구
러 감싼 중 “성급한 비난 금물”

전날 부차를 직접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들은 수류탄 폭발로 자신의 아파트와 집에서 살해당했고, 러시아군은 오직 재미로 자동차 안에 있던 민간인들을 탱크로 깔아뭉갰다"며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성들은 자녀들의 눈 앞에서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고 덧붙인 뒤 "이러한 짓은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자)와 같은 다른 테러리스트들의 짓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러시아군을 규탄했다. 4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성폭행과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된 여성’ 사진 속 시신에 나치 독일군의 상징 ‘하켄크로이츠(†)' 모양이 그을린 자국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침략 당사자이면서도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러시아를 향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에 대한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를 다루고 있다"면서 "그들이 자신의 침략에 대한 (안보리)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상임이사국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기력한 유엔에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안보리가 보장해야 할 안보는 어디에 있는가. 그곳(부차)에는 없었다"며 "다른 대안이 없다면 다음 선택지는 여러분이 완전히 해산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러분은 유엔의 문을 닫을 준비가 됐는가.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는가"라고 물은 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날 참혹한 영상이 상영된 뒤 회의장이 술렁일 정도로 충격이 컸음에도,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를 감쌌다. 장준 주유엔 중국대사는 "성급하게 비난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금껏 친러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온 인도는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만행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 T.S. 티루무르티 주유엔 인도대사는 부차 학살과 관련해 "매우 충격적"이라며 "우리는 이런 학살을 명백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한 독립적인 조사 요청을 지지한다"고도 말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해 "실질적인 책임 추궁을 보장할 수 있는 독립 조사를 즉각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도시 브로？쳐タ【？는 러시아군에 의한 아파트 포격으로 2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 대학살 정황이 추가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5일 기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사건 4684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