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솔직함의 미학
신간 도서를 매주 모니터링한다. 오래 공을 들이거나 평생의 통찰을 쏟아부은 역작을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엄청난 내면적 솔직함을 기반으로 쓴 저작을 만나는 순간이 잦아졌다. 쓴다는 행위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내면 성찰을 통해 체득한 지극한 솔직함으로 자신을 처절하게 분석한 책을 만나면 저자와 출판사에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진다. 그 솔직함에 이르기까지 그가 감당했을 고뇌, 심연 속 자신을 향한 끝없는 사유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19년 차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전안나는 신작 (가디언)라는 책을 선보였다.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진솔하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책장을 넘기며 울컥울컥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의 삶이 안쓰러워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의 행간 고백처럼 ‘대다수 인간의 삶이, 성찰하지 못한 무지한 주변인에 휘둘리는 구조로 흘러가는’ 비극적인 상황이 만연한 데 따른 안타까움을 지극한 솔직함 속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세상에 나온 김가을의 저서 (천년의상상)에 담긴 내면적 솔직함의 강도도 충격적이었다. 아버지 폭력에 맞선 김가을의 내밀하고 치밀한 지적 통찰을 접하며 꾸미지 않는 진실이 가장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가식 없는 지극히 솔직한 글쓰기만이 진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이미 내밀한 개인사를 솔직하게 토로한 글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인기는 프레임 없는 세상, 가짜뉴스 없는 세상, 임기응변 없는 우직한 세상을 염원하는 대중의 바람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전안나는 ‘나는 솔직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다. 기어이 솔직해져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솔직함은 투명함과도 이어진다. 지극한 솔직함에 이르렀을 때 마음도 티끌 없이 투명해지고, 사고 체계도 명료해질 수 있다. 투명한 마음들이 많아져야 소통과 통합도 제대로 이뤄진다. 하지만 대선을 넘어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솔직하지 못한 분노 발산식 주장들이 난무하며 분열과 대립을 부추긴다. 전안나와 김가을이 선물한 솔직함의 미학이 우리 사회를 환하게 물들이기를 소망한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