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수국과 치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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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1962~ )

두 개의 거울이지 커다란 얼굴과 작은 얼굴이 골목의 끝집마다 송아지와 낙타의 혹처럼 서 있지 미래의 조달청이라고 우리는 운을 떼며 조청을 그리워한 것처럼 바다에 들러붙었지 그렇다 치자 밑줄 그은 심장이 바다에 풍덩! 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은 쿠키의 맛처럼 제각각이어서 젖은 하늘빛 린넨 셔츠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육체를 마쳤다 치자의 끝말은 치자리 수국의 끝말은 수구리 짙어진 하늘과 옅어진 등대 사이에서 면과 읍과 리를 그리워한 거지 사라진 희뿌연 낮달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보랏빛 비를 뿌렸지 다가오는 달빛은 인간의 뜨거운 손끝에 누런 화상의 자국마저 길가에 버려진 치자꽃의 리, 그렇다 치자 아니라고 치자 수국은 태양처럼 크고 둥글었지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시집 (2022) 중에서

이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단숨에 쓴 것으로 보인다. 단숨에 말과 말들이 꼬리를 물고 다가오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한다. 이 단숨에 시인은 ‘치자의 끝말은 치자리 수국의 끝말은 수구리’ 같은 꽃마을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때 ‘다가오는 달빛은 인간의 뜨거운 손끝에 누런 화상의 자국’을 보여준다. 달빛에 화상을 입는다니! 놀랍다. 시는 어디에도 볼 수 없었던 시인의 방식으로 쓰는 장르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꽃도 달빛도 시도 이야기할 수 없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시인의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우리도 날마다 무언가를 마친 얼굴들을 하고 귀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핍과 완성 사이에 있는 인간의 귀가를 생각해 본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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