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헬기 추락 사고] ‘해경 자부심’ 두 자녀 아버지, 결혼 앞둔 예비 신랑 생명 앗아가
제주 마라도 남서방 해역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하고 실종된 남해해양경찰청 항공대 소속 해경들은 모두 평소 강한 책임감과 뛰어난 업무 역량으로 모범이 되는 동료였다. 특히 두 자녀를 둔 가장, 내년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해경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셨던 분이었어요. 그런 아버지를 위해 이제 나라에서 책임을...”
남해해경 정두환(50) 경위의 아들은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해경 헬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정 경위는 아내와 딸, 아들 곁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정 경위의 아내는 “직장 때문에 남편을 따라 포항에서 부산에 왔다”며 “당장 살고 있던 사원아파트에서 계속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해해경에 따르면 정 경위는 총 비행시간이 3238시간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동료 심리치료 자격을 취득할 정도로 동료들의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상한 동료였다. 또한 해군 소령 출신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자기 계발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평소 동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정 경위는 탁월한 업무 역량으로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2020년 10월 5일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중학생 2명이 실종된 사고에도 헬기 부기장으로 수색 작업에 나서 실종자 1명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2021년 11월 28일엔 통영 욕지도 모노레일 탈선사고 부상자 구조 작업에도 나서 중증환자 5명을 무사히 긴급 구조해 병원에 이송하기도 했다. 당시 몰았던 헬기가 이번에 사고가 난 S-92 기종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새롭게 가족을 꾸릴 날을 꿈꾸던 한 젊은 해경도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에 따르면 이번 해경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황현준(27) 경장은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랑이었다. 오랫동안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논하던 차였다.
또한 항공대 조직 내에서 서무와 시설, 기록물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원만하게 수행해 온 유능한 대원이었다. 해군 하사 출신으로 2019년 6월 해경에 입직한 황 경장은 그동안 해군 전탐사 경험을 현장에서 발휘해 각종 응급환자 이송 임무에서 크게 기여해왔다.
전탐사는 공중에서 선박이나 사람 등을 식별하는 장비를 운용하며 구조가 필요한 인물을 찾아내는 수색 작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황 경장의 어머니는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보니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순직’했다는 사실조차 와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현재 실종 상태인 정비사 차 모(42) 경장도 항공기 곁에서 늘 머물면서 쉼 없이 일하는 훌륭한 엔지니어라는 평이 남해해경 내에서 전해지고 있다.
8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시민장례식장에 정 경위와 황 경장의 빈소가 마련됐다. 아직 장례식장에서 조문과 분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로 실종된 차 경장의 수색 결과를 지켜보고 장례 규모와 일정을 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숨진 정 경위와 황 경장의 시신은 이날 오후 2시 40분께 부산 영도구 부산해양경찰서에 운구돼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해경은 유족과 장례 일정 등을 논의하고 있다.
8일 제주해양경찰청과 남해해경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30분께 제주 마라도 남서쪽 약 370km 해상에서 남해해경 항공대 소속 S-92 헬기가 바다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4명 중 정 경위와 황 경장 등 2명이 숨지고 기장 최 모(47) 경감이 중상을 입었다. 차 경장은 실종된 상태로 해경이 인근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사고는 대만 해역에서 실종된 우리 국적 선원 6명을 찾기 위해 이동하려던 제주해경 경비함정 3012함에 헬기가 중앙특수구조대원 6명을 내려준 후 김해공항으로 복귀하던 도중에 났다. 헬기는 지난 7일 오후 9시 10분께 김해공항에서 이륙해 8일 오전 0시 50분께 3012함에 도착했다. 구조대원과 장비 등을 내린 후 헬기는 3012함에서 1시 30분께 다시 이륙했지만 곧바로 추락했다.
앞서 지난 7일 오전 9시 50분께 대만 해역에서 부산에 거주하던 선원 6명이 탑승한 332t급 예인선 ‘교토 1호’가 실종됐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