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파키스탄, 칸 총리 축출 코로나·전쟁 여파 신흥국 ‘강타’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의회가 불신임 투표로 총리를 축출했다. 스리랑카과 마찬가지로 경제난에서 시작된 정부 수장에 대한 불신이 정치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루 또한 연료 가격 폭등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고 대통령이 사임 압박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긴축정책에 의한 세계 신흥국의 ‘위기의 도미노’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CNN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하원 의회는 이날 새벽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2018년 8월부터 집권한 칸 총리의 연립정부는 붕괴하게 됐다. 칸 총리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였다.
파키스탄 하원, 불신임안 가결
“경제 붕괴·친중 외교로 입지 축소”
중국 일대일로 참여, 부채에 허덕
스리랑카도 코로나로 경제 허덕
연료·자재난… 대통령 퇴진 시위
페루 비료 가격 급등… 시위 격화
야권은 칸 총리의 집권 기간 경제는 무너졌고 친중 성향의 외교 정책으로 국제적 입지가 축소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부채에 허덕였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현지 일간 익스프레스트리뷴은 최근 파키스탄의 대외 채무가 6월이면 1030억 달러(약 1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달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은 12.7%를 기록해 민생고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경제난 속에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이 가결되면서 정치 혼란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칸 총리가 미국의 내정간섭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에 대한 불신임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는 등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8일 대국민 연설에서 지지자들에게 거리 시위에 나서라고 노골적으로 독려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연료와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가뜩이나 높은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이에 신흥국 곳곳에서 대대적 시위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통화 긴축과 상하이 등 도시 봉쇄에 따른 중국의 급격한 성장 둔화도 신흥국을 위협하고 있다. 여러 악재가 동시에 몰려온 ‘퍼펙트 스톰’이 세계 신흥국을 도미노처럼 덮치고 있다.
이보다 앞서 벼랑 끝에 내몰린 스리랑카의 경우 1948년 독립국가 수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 관광산업에 의존하던 스리랑카 경제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연료난과 원자재난을 겪고 있다. 외화가 바닥나 석유를 구해오지 못하면서 화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돼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종이가 없어 학교에서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도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했지만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해 ‘채무에 덫’에 시달렸다. 분노한 시민들은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페루에서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료와 비료 가격 급등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5명이 사망했다. 페루의 물가 상승률도 1998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간 가운데,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에 대한 사임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